우 몽은 <정신과 의사, 은퇴>
초등학교 일학년인 손자가 지난해 유치원에 다닐 때 화요일은 집에서 도시락을 가지고 가는 날이었다. 아이가 편식이 심해서 도시락 싸는 데 신경이 쓰였는데 다행히 김밥을 좋아해서 김밥을 주로 싸주곤 했다.
하루는 그 김밥을 하나도 안 먹고 고스란히 도로 가져왔다. 손자 아이가 울상에 되어가지고 하는 말이 옆에 앉은 제니가 자기 김밥을 보더니 "역, 스시" 하고 말하면서 토하는 시늉을 하더라고. 친구들 태도에 민감한 아이가 옆에 앉은 여자아이가 그렇게 말하는데 그 김밥을 먹을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것은 당연하다. 그 후로 아이는 김밥을 싫다고 했다. 내가 김밥은 스시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김밥 만드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리고 한국 학생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김밥이라고 말하면서 별 소리를 다 해도 아이는 막무가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불쑥 이런 제안을 한다. "할머니, 할머니가 김밥을 만들어 가지고 학교에 와서 김밥에 대해서 아이들한테 설명을 하고 먹어보라고 해. 그러면 아이들이 김밥이 스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거야" 하고. 아이가 자기도 김밥에 대한 고민을 나름대로 했는가 보다. 나는 아이의 말에 그래 그거 참 좋은 생각이다 하고 말은 했지만, 우선 학교에서 허락을 할지, 아이들에게 부모 허락 없이 김밥을 먹어보라고 해도 되는 건지 등등...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 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아이에게 "좋은 생각인데 선생님하고 먼저 의논을 해 볼게" 하고 대답했다.
며칠이 지나도록 아이는 매일 할머니 언제 김밥 만들어서 우리 학교에 올 거야? 하고 묻곤 했고, 나는 아직 선생님하고 의논을 못해보았는데 곧 하도록 할께 하는 대답만 했다. 아이와 할머니가 주고받는 말을 듣고만 있던 아이의 엄마인 나의 딸이, 이미 담임선생님에게서 허락을 받았다면서 "내가 할께, 엄마는 김밥만 좀 만들어 줘" 한다. 정해진 날 나는 김밥을 계란, 고기, 소시지, 채소를 따로따로 넣어서 골고루 학생 20명, 선생님 두 사람을 포함해서 22개씩 만들었다. 한 김밥에 여러가지를 다 넣으면 아이들은 자기네들이 싫어하는 것은 골라내던가 아니면 안 먹기 때문에. 그 김밥을 한국 전통 그릇에 담아서 보냈다.
불고기도 한 접시 곁들였다. 아이 엄마는 인터넷을 통해서 이미 준비한 한국 풍속을 소개하는 책 몇 권 하고, 아이의 돌복, 돌 사진도 싸들고 학교엘 갔다.
아이 엄마가 돌아와서 하는 말이 "김밥을 좀 더 만들었어야 했는데" 였다. 아이들이 더 없느냐고 하면서 빈 그릇을 들여다 보는데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더라고 한다. 학생들에게 준비해간 책을 보여주면서 한국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고, 아이의 돌복, 돌 사진도 보여주고 김밥에 대해 설명을 하고나서 모두들 먹어보라고 했더니 선생님, 아이들이 어찌나 맛있다고 하면서 잘들 먹는지, 선생님들은 어떻게 만들었느냐고 하면서 레서피를 달라고들 하고....
학교에서 돌아온 손자아이는 얼굴에 미소를 환하게 띠우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할머니 내가 말했지? 아이들에게 한번 맛을 보여주어야 된다고". 요즘 한식 세계화를 외치는데 한식이나, 한국문화를 세계화 하기위해서는 어쩌면 유치원생들에게서 부터 시작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