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갑헌 (맨체스터 대학 철학교수)
‘그게 무슨 소리요? 한국사람 치고 애국가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요?’
그렇군요. 그런데 애국가를 4절까지 다 아시나요? ‘글쎄, 그건 좀… 한국사람 치고 그 거 다 아는 사람이…’예, 그렇군요.
내가 다닌 사범부속 초등학교에서는 월요일 조회에서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는 전통이 있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에서 시작해 철갑을 두른 듯하던 ‘남산 위의 저 소나무’와 공활 (空闊)한 ‘가을 하늘’을 거쳐 마침내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라는 4절의 결론까지, 깨끝한 차렷자세로 힘차게 부르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애국하기 위해 애국가를 4절까지 다 알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애국인가 하는 것이다. 선거철이 되니 미국이나 한국이나 애국하는 사람들로 넘치는 듯 하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자신과 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만이 애국하는 사람이라는 편견이 사회적인 분위기가 되는 것을 나는 경계한다. 미국 시민으로 살아온 시간이 한국에서 산 시간보다 더 긴 나에게 애국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는 분명하다. 스스로 선택해 미국 시민이 되었고, 따라서 시민으로 의무를 다하고 미국을 사랑하며, 그 지도자들이 바른 정책을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을 나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또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쳤다. 나는 이것을 애국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 살면서 미국을 욕하고 저주하는 사람들은 마치 서울에 앉아서 한국을 욕하고 김일성을 찬양하는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한인의 피를 받은 사람이라는 칼날처럼 예리한 자각이 있다. 또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자랑스러운 지는 확실치 않지만, 한인이라는 자부심을 잃은 적이 없다. 한인이라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두 번 있는데, 그것은 모두 한국의 국회의원이란 이상한 사람들과 관련이 있다. 이유가 무엇이던, 도끼와 전기톱을 들고 국회에 난입하고 회의장에 최루탄을 터뜨리고서도 큰소리를 치는 상식 이하의 인간들을 보면서, 가슴에 꼽히는 화살같은 아픔을 느낀 적이 있다. 민주주의는 타협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다.
아직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조선시대의 ‘당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타협과 협상이 없는 곳에는 민주주의가 정착 할 수 없다. 자기 당파의 주장 만 옳다고 끝까지 우기던 ‘당쟁’이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한 역사를 다 잊어버린 것 일까?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은 그 역사를 다시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한국에 다시 선거철이 다가 온다. 이중국적 문제와 어울려 소위 해외 동포도 선거에 참여 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중국적 문제나 재미 동포가 한국 선거에 참여 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다.
우선, 그것은 미국법에 어긋나는 일이며 생업과 가정이 있는 이곳에서 성실하게 살아, 백인 흑인을 포함한 우리의 이웃에게 존경받는 한인이 되는 것이 바로 미국에 살면서 한국을 사랑하고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애국가도 4절까지 불러보고, 또 네 개나 되는 미국 국가를 식구 모두 둘러 앉아 소리 높여 불러보는 것도 참 애국의 의미를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한인사회에도 한국의 특정한 정당을 돕는 모임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걱정스러운 일이다. 나는 그 모임에 참가하는 분들의 열성을 존중한다. 그러나 그 분들 중에 과연 몇 분이나 한국 차를 타는지 의심해 본 적도 많이 있다. 그런 모임들이 어떤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무엇을 위한 애국인지 한 번 깊게 살피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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