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일은 매일 누군가를 만나고 또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다.
나는 내가 아는 사람이나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이런 물음을 자주 하고는 한다.
그대는 인생의 단 한번 뿐인 여정(旅程)에서 <그 한 사람을 만났는가?>라고.
만일 아직 그 한 사람을 모르거나 만나지 못했다면, 한번 만나보라고.....
살아가면서 수 없이 많은 만남이 있지만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만남은
바로 그 한 사람과의 만남이다. 이것은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살고 죽는 문제와
직결된 것이기 때문에 결코 소흘히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시대의 지성인 이어령(76) 전 문화부 장관이 바로<그 한 사람>을
그의 삶 73년 만에 절대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만났다고 해서 요즘 화제인데,
’지성에서 영성으로’ 라는 신앙고백서가 바로 그것이다.
그가 그 한 사람을 만난 것은 개인적으로도 가장 커다란 사건임에 틀림없지만
연일 매스컴에서 다루고 본인이 책까지 펴내며 알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아마도 그의 이름과 행적에 함께 붙어다니는 지성인의 이미지와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실려있는 간단치 않은 영향력 때문일 것이다.
종교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문제이다. 어느 한 사람의 영적인 체험과 고백을
모두의 잣대로 견주어 말하는 것은 무리일 듯 싶으나 가만히 들어보면
그를 비롯하여 동서의 저명 대가들도 다 고백하며 만나고 간 <그 한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 왜 만나야 하는지 점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영성은 평범에서 오지 않는다. 영성은 알을 깨고나오는 고통 속에서 얻어진다.
그의 지적인 편만과 냉철의 지성도 알을 깨고 겸허의 자리로 나오기까지 무려
73년의 세월이 걸렸다. 비로서 자유함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한편 그의 영성으로 향한 고백은 순수한 믿음에서의 출발이 아니라,
딸 아이의 병을 걸고 일종의 계약이나 흥정같은 선상에서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위험하게 출발한 것이어서, 얼마나 그 당시 그의 심정이 절실하고 절박했는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그가 갈구하기 이전에 수도 없이 그의 마음을 두드리며 그가 마음의
문을 열기를 기다려 왔었으나, 그가 듣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지성은 세상의 판단기준과 가치관으로 바라보는 제한적인 삶을 말한다.
영성은 지성을 뛰어 넘어 믿음과 죄사함과 영생이 있는 구원의 서정을 말한다.
누구든 영성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 누구에게나 늦게 만나고 일찍 만나고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가 영성의 사람들이다.
그는 ‘아직도 나는 지성과 영성의 문지방 위에 서 있다’ 라고 스스로를 말한다.
영성은 사막과 광야에서 더 잘 보인다. 내가 현재 서 있는 삶의 자리, 이 곳이
바로 광야와 사막이 아닌가?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은 빛난다.
나는 한 없이 작은 존재이면서도 우주보다 큰 존재이다. 그렇다면 이 광야를
무사히 통과하여 우물가에 선 그 한 사람으로부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받아마셔야 하지 않겠는가?
아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아는 바대로 입으로 시인하며 그 영광의 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들어오면 보인다.
아직 영성의 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그 누군가를 위해 이 글을 바친다.
당신은 그 한 사람을 만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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