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아침이면 옆집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가 반갑다. 8년전 우리가 이 타운홈으로 이사올 때는 돌쟁이였던 러시아 소녀가 이제는 초등학생이 되어 몇 해전부터 피아노를 배우는지 딩동거리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제법 노래를 치곤 한다. 집 벽이 닿아 있어 소리가 한 집처럼 들리지만 그 소리가 조금도 시끄럽지가 않고 오히려 옛 기억을 더듬게 해준다.
우리가 이 집에 이사왔을 때는 8학년인 아들과 5학년인 딸이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왕성히 연습하던 때였다. 연습할 때마다 어린 아이가 있는 왼쪽 옆 집과 백인 할머니 혼자 사시는 오른쪽 옆 집에 늘 미안하고 조심스러워 가능한 한 늦은 시간에 연습하지 않도록 다그치곤 했다. 엄마인 내게는 듣고 또 들어도 귀하기만 한 연습소리였지만 페달을 밟아가며 치는 그랜드 피아노 소리가 남들에게는 얼마나 고역이었을까 싶다. 그래서 늘 마주칠 때마다 이웃에게 양해를 구하곤 했는데 특히나 옆 집에 사는 백인 할머니는 우리 두 아이의 연주 소리를 즐긴다며 어떤 때 만나면 요즘 왜 바이올린 소리가 안 들리느냐 묻곤 했다. 그런 그 할머니의 마음이 옆집 아이의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나도 이제 조금 느껴진다.
지난 연말 설치한 위성 방송으로 요즘은 텔레비전을 틀면 한국방송을 볼 수가 있다. 어느 늦은 저녁에 무심코 틀은 채널에서 배철수가 진행하는 7080쇼에 가수 윤항기씨가 나와 옛 유행곡들을 메들리로 부르고 있었다. 그 노래들을 들으며 마음이 젖어들고 있는데 카메라가 돌아가며 비추는 방청객의 모습이 마치 거울을 보는 듯 내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게 보인다. 나 자신이 그리 감상적인 편이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해왔는데 나이가 들며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피할 수가 없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일 망정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왔고 그 시절을 그리움으로 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저녁 시간에 남편과 둘이 식사를 하러 들어가 앉은 식당의 한 켠에 우리처럼 단 둘이 와 음식을 기다리는 부부가 보인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자리한 식탁에서 들려오는 단란한 소음을 배경으로 중년 부부만의 식탁이 더욱 오붓하고 쓸쓸하게 비춰진다.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고 힘든 투정으로 아이들을 나무라던 때가 생생한데 이젠 엄마의 안부를 묻는 아이들의 전화에 마음을 기대게 되니 참 세월이 무상하다.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어도 이런 느낌은 처음이기에 인생의 선배들을 떠올리며 ‘아! 그 분들도 그때 이랬었겠구나.’ 뒤늦게 깨닫는다. 그러면서 지금이 참으로 중요한 때임을 절감한다. 아직도 마음은 지나온 시간의 습관에 묶여 있는데 이제는 부부 두 사람이 엮어가야 할 미래가 우리 앞에 이미 당도해 있음을 본다. 짧은 신혼시절 이후 잊다시피 지내온 우리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감사함으로 누리며 건강하게 채워가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