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언론은 흔히 ‘제4의 권부’(the fourth estate)로 불린다. 입법, 행정, 사법부와 견줄 수 있는 권력 기관이란 뜻이다. 언론에 이런 감투를 씌워준 것은 18세기 영국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다. 그는 “3부 권력 외에 기자석에 또 하나의 권부가 존재한다. 이것이 어떤 권부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근대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버크는 영국 의회가 미 식민지를 억압하려 하자 일찍이 미 독립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지지한 인물이다. ‘타고난 영국인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식민지 주민들을 힘으로 탄압하려는 것은 영국의 전통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존 밀턴에서 존 로크, J. S. 밀에 이르기까지 언론의 자유를 주창한 것은 주로 영국의 지식인들이었지만 그 싹이 활발하게 피어난 것은 오히려 미 대륙에서였다. 18세기 초엽 식민지 신문들은 지구상 어느 곳보다 언론의 자유를 구가했다. 연방 수정 헌법 1조가 다른 어떤 자유보다 먼저 이를 보장한 것은 미국을 창건한 이들이 이를 얼마나 중시했는지 알 수 있다.
‘독립 선언서’ 초안자이자 제3대 대통령이 된 토마스 제퍼슨은 언론의 비난에 누구보다 시달렸으면서도 이를 참아내고 오히려 그 자유를 보호하는데 앞장섰다. 두 번째 취임 연설에서 그는 “자유 언론의 공격을 견뎌내지 못 하는 정부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언론 자유에 대한 정치인과 국민의 존중, 사명감에 불타는 언론인들 덕분에 미국 언론의 영향력은 아직도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그런 미국을 대표하는 언론으로는 보통 뉴욕타임스, 월 스트릿 저널, LA타임스 등이 꼽힌다. 뉴욕타임스는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미국의 대표적 정론지이고 월 스트릿 저널은 월가와 관계된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바이블이나 다름없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정계의 중심인 워싱턴을 무대로 부수에 비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LA타임스는 100년 전 깡촌이나 다름없던 LA를 미 제2의 대도시로 키우는 기관차 역할을 했다.
이들 네 신문은 여러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첫째는 장인이 일으켜 세운 신문을 사위가 이어받아 키웠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는 옥스 가문이 하던 것을 아더 설즈버거가 사위로 들어와 3대째 물려받아 하고 있고 워싱턴포스트는 마이어 가문이 하던 것을 필립 그레이엄이 이어받아 지금 그 아들이 운영하고 있다.
월 스트릿 저널은 바론 가문이 인수했다 지금은 그 사위로 들어온 뱅크로프트 일가가 경영권을 쥐고 있고 LA타임스 또한 그레이 오티스가 하던 것을 사위였던 해리 챈들러 가가 맡아 최근까지 경영해왔다. 이 중 저널만 빼고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LA타임스는 한때 망했던 신문을 인수해 살려놨다는 점까지 같다.
시카고 트리뷴에 인수됐다 샘 젤에게 팔려나가면서 챈들러 가가 완전히 손을 턴 LA타임스를 제외하고는 세 신문 모두 주인 일가가 결정권을 쥔 주식을 차지하고 있는 ‘이중 구조’로 돼 있는 점도 닮았다. 이 때문에 외부 인사는 이들 신문을 인수하고 싶어도 이들 가문의 동의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 주요 언론들이 한결 같이 특정 가문에 의해 대대로 소유돼 왔다는 사실은 세습 경영이 반드시 언론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LA타임스의 경우 소유권이 챈들러 가에서 트리뷴으로 넘어가면서 수익만 따져 기자들을 마구 감원하는 바람에 편집국장이 수시로 갈리고 기자들 사기만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단기적 이익을 따지는 월가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으로 신문의 질을 우선하는 가문의 보호막이 우수 언론을 가능케 했다는 분석도 있다.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월 스트릿 저널을 시가보다 65%나 높은 50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나서 화제다. 뱅크로포트 가와 노조는 반대 의사를 밝혔으나 가격이 워낙 높아 가족 중 일부가 찬성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과연 저널이 머독의 손에 넘어갈 지, 넘어가서도 지금과 같은 수준을 유지할 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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