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간 여성들이라면 “시”자가 들어가는 단어는 무조건 싫어하는 이유를 알 것이다. 아무리 잘 해도 여전히 넘을 수 없는 그 벽! 요즘은 친부모님들보다도 더 가까이 친자식보다 더 살갑게 지낸다는데 나는 요즘 사람이 아닌지, 솔직히 친부모님이 더욱 편하고 시부모님이 아들을 더욱 챙기시는 것 조차 당연하다 생각이 든다. 아무리 편하게 대해 주셔도, 아무리 많은 시간을 함께 해도 피를 나눈 가족들이 갖는 그 끈끈함을 가지는 것은 쉽지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의 최대의 행운은 결혼이었다. 그 때 남편을 통해 시부모님과 가족이라는 관계를 맞게된 것이, 내 인생에서 최대로 잘한 일이다.
갓 시집온 나에게 처음으로 당부하신 말씀은 “부모 공경해라”도 아니고 “무조건 남편에게 잘해야 한다”도 아니었다. 단지 남편과 내가 서로 위해주며 탈없이 사는 것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라 하셨다. 어린 나이에도 참 멋지게 들렸고 지금까지 살면서 자주 기억하는 말씀이다.
시집오자마자 첫아이를 낳고 엄마가 무엇인지 부모가 무엇인지 천지분간도 못할 때 지금 생각해도 철딱서니 없었다 싶은 행동을 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직까지는) 호되게 시부모님께 혼났다. 1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때처럼 심하게 혼난 적이 없었다. 나의 잘못을 반성하기 전에 친정 식구나 친구 하나 없는 낯선 미국에서 낯선 시부모님께 혼나는 것이 서럽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해 무릎꿇고 앉아 눈물만 뚝뚝 흘리며 이것이 시집살이구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지금은 어렴풋이 깨달아가고 있다.
자식의 앞길이나 진로를 결정해야 할 때 의견은 제시하시지만 강요는 하시지 않으시고 훈계보다는 칭찬을 많이 하시고, 언제든지 먼저 손 내미시고, 먼저 안아 주시고 본인이 줄 수 있는 건 다 주시려 하시고, 아프신 시어머님 바쁘다는 핑계로 들여다보지도 전화 한 통도 하지않는 싸가지없는 며느리를 한 번도 나무라지 않으시고 참아주시는 그런 분들이다.
“남”의 부모를 나의 부모”님”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또한 “남”의 자식을 “나”의 자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이렇게 기쁨도 슬픔도 미움도 못난 구석도 잘난 면도 서로 나누고 깍이고 부딪치다 보면 점 하나가 빠진 “님”이라는, 받침 하나가 빠진 “나”라는 단어로 서로를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시부모님께 꼭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몸이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바램대로 자식들 일이 잘 안풀리더라도, 원하시는 것이 잘 안되더라도 이 모든 것들이 부모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왔다가 또 사라지기도 하는 자연스러운 삶이라 이것들과 상관없이 늘 마음이 평화로우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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