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옥씨가 아들 종혁군이 추방된 13일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이승관 기자〉
“아들과 또 떨어져야 하나요”
미 밀입국 아들 한국추방
“엄마, 이렇게 떠나기에는 너무 억울해요. 말 한 번 제대로 못 해 보고 이렇게 가야 돼요?”
13일 수화기를 타고 흐르는 아들의 애끓는 절규에 탈북자 전영옥(42)씨는 떨리는 어깨를 추스를 수 없었다. 1997년부터 7년여 동안 중국에서 탈북자로 지내며 굳게 다진 그의 심장도 어리기만 한 19세 아들의 울부짖음에는 한 없이 녹아내릴 수밖에 없었다.
모진 세월을 뒤로 하고 아들과 한번 잘 살아보겠다던 꿈이 다시한번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지난 11월 멕시코에서 미국 밀입국 후 당국에 체포돼 추방 판결을 받은 전씨의 아들 김혁종(가명·19)군은 이날 전격적으로 샌안토니오에서 시카고로 이송,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LA에서 정치 망명재판 중인 전씨가 망명을 허가받는다 해도 모자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이제는 아무도 보장할 수 없다. 혁종군은 한국에서 미국 비자 신청을 거부당해 밀입국을 통해 어머니와 만남을 꿈꿨었다. 지난 8월 정치 망명을 정식 접수한 전씨는 “1주일 전만 해도 혁종이에게 추방 판결을 내린 판사가 제가 접수한 정치 망명 관련 서류를 완비한 서류를 보내라고 했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중국에서 독일학교 진입을 시도하다 붙잡혀 한차례 강제 북송 경험이 있는 전씨가 한국을 등지고 미국 망명을 신청한 계기는 2004년 상원의원 초청으로 영국에서 북한의 인권과 종교 탄압 등을 증언했기 때문이다.
전씨는 그 이후 “입나발을 불었으니까 가족을 북한으로 잡아들이겠다”는 북한 간첩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숱한 전화에 신변 위협을 느껴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중국도 아닌 미국에서 아들과 생이별을 할 줄 몰랐다는 전씨는 “한국에 있으면 무슨 일이 닥칠지 몰라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며 “미국은 인권을 소중히 하는 나라라고 소문이 났고 아무리 힘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다 좋게 일이 풀릴 줄 믿었었다”며 고개를 떨궜다.
전씨는 “종혁이와 함께 정치 망명을 받아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고 싶었을 뿐”이라며 앞으로 종혁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것이라며 오열을 쏟아냈다.
<이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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