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의 최후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지만, 무식하면 아프기도 하다.
무식한 식탐 때문에 배탈난 이야기.
지난 주 한 지인과 일식집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생선을 먹지 않는 나는 일식집에 가면 별로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캘리포니아 롤이나 우동, 혹은 테리야끼 도시락 같은 걸 시키거나 어떤 날은 회덮밥을 시켜서 회만 몽땅 덜어내고는 야채와 초고추장에 밥을 비벼먹곤 한다.
일식당에 갈 때만은 동료들 사이에 나의 인기가 크게 높아지고, 서로 내 옆에 앉으려고 신경전을 벌이는 이유가 바로 이 덤으로 먹게되는 회 때문인 것이다.
그날도 간단히 먹을 양으로 회덮밥을 시켰다. 그런데 그 분은 좀더 좋은걸 사주고 싶다며 자꾸 뭘 더 시키라고 권유하였다. 그래, “생선회는 안 먹지만 미루가이하고, 전복은 먹는데요”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싱싱한 전복, 미루가이 두 접시가 세수대야 만한 회덮밥 그릇과 함께 내 앞에 놓여졌다. 그동안 수없이 많이 일식당에서 외식을 했고, 사시미 접시도 수없이 많이 받아보았지만 그렇게 많은 양의 전복과 미루가이가 온전히 나만의 몫으로 나온 적은 한번도 없었기에 일단 나는 눈물나게 감격하고 흥분하였다.
종지 2개에 와사비 간장과 초고추장을 각각 따라놓고는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대식가라도 그 많은 회덮밥과 전복, 미루가이를 다 먹을 수는 도저히 없었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얼음을 침대 삼아 요염하게 누운 미루가이가 40여쪽, 전복 2마리 회친 것은 30여쪽이 족히 되어 보였다. 반도 먹기 전에 물리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사주는 분은 실컷 먹으라며 단 한 점도 손에 대지 않는 것이었다. 도와달라고 아무리 사정을 해도, 회는 살찌는 음식도, 배부른 음식도 아니니 혼자 다 먹으라고 권하기만 하였다.
그럴 때 머리가 좀 좋았으면 싸간다고 하면서 젓가락을 놓으면 될 것을, 중요한 순간에 미련해지는 나는 비싼 음식 남기기가 너무나 아깝고 미안해서 끝까지, 마지막 한 점까지 헉헉대며 초고추장 찍어서 다 먹고 말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서너시간후, 나는 속이 쓰리다못해 몸이 오그라들고 정신이 아득해지는걸 느꼈다. 먹기도 엄청나게 먹었지만 회덮밥을 비롯하여 매운 초고추장과 회를 그렇게 많이 먹었으니 성할 리가 있겠는가. 평소에도 과식을 자주 하여 속 불편하다는 호소를 이따금 들어오던 동료들도 이번에는 심상치 않은 것을 감지했다.
빨리 약을 먹어야 한다고 걱정들을 하고 사방에서 우려의 눈길이 답지했지만, 주제에 약도 가려먹는 나는 가루약이나 알약 외에 마시는 물약은 절대 먹지 못하는 것이 또 하나의 문제였다.
어려서부터 아무리 배가 아파도 절대 활명수를 먹지 않는 이유가, 약이면 약답게 쓰던지, 맛없든지 할 것이지, 약이 약 아닌 척 하느라고 달짝지근하게 만든 것을 나의 입맛은 결코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비위라, 알카 셀처나 펩토 비스몰은 결단코 마실 수가 없고, 회사 비상약통에서 찾아낸 ‘씹어먹는’ 펩토 비스몰조차 나에게는 ‘그림의 약’이었다. 결국 한 동료의 조언에 따라 씹어먹는 펩토 비스몰을 잘게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먹는 지혜까지 동원했지만 그 정도로 나을 배탈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한가했던 주말 내내 나는 집에 얌전히 앉아서 성난 위를 달래가며 나의 무식한 식탐을 반성했다. 그리고 그 반성 속에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던 젊은 날의 ‘철통위장’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소화시키는 일에서 마저 나이 들어감을 느껴야하는 서글픔을 함께 느꼈던 것이다.
오랜만에 살 좀 빠질까 하는 기대가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요즘은 그나마도 마음대로 되어주지 않는 것, 그 역시 나이 들어감의 비애일까, 아니면 이도 저도 다 핑계요 단지 모든 것이 다 무식한 식탐의 최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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