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초 서울근교의 한 마을.
한 혼혈소녀는 자신의 엄마가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에 의해 강제로 대들보에 목이 매어 살해당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처녀의 몸으로 미군과의 사이에서 혼혈아를 낳아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게 이유였다.
주변의 차가운 눈총 속에 고아원으로 넘겨진 소녀는 캘리포니아에 사는 미국 목사의 집에 입양됐다. 그러나 그녀의 입양은 또 다른 시련의 시작이었다. 고교졸업 후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결혼한 남편은 가학성 변태성욕자였다. 폭행과 학대가 반복되는 생활을 견디다 못한 그녀는 딸아이를 품에 안고 야반도주하듯 집을 뛰쳐나왔다. 차별과 고통 없는 희망의 세상을 찾으려는 그녀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아픔으로 얼룩진 충격의 기억들을 사실적으로 서술, 미 출판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한인 혼혈여성 엘리자베스 김씨가 최근 자전적 소설 ‘만가지 슬픔’(Ten Thousand Sorrows)의 한국어판을 출간해 화제가 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인근 샌라파엘에 살고 있는 김씨는 이 책을 통해 ‘두 개의 전혀 이질적 문화권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던 한 혼혈여성이 고난과 슬픔으로 점철됐던 비극적 운명의 응어리를 사랑의 힘으로 풀었다’는 호평을 받았었다.
남편과 이혼한 뒤 동네 주간지의 사환으로 새 출발을 했던 김씨는 이를 악문 노력을 거듭한 끝에 북가주 노보타시에 있는 일간지 ‘마린 인디펜던트 저널’(Marin Independent Journal)의 편집국장 자리에 올랐고 지난해 봄에는 ‘만가지 슬픔’ 영문판이 미국 등 전 세계 17개국에서 출간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키자 언론인의 길을 접고 책 홍보활동과 여행에만 전념하고 있다.
하지만 고통의 시간은 지났어도 정신적 상처는 남아있었다. 김씨는 사실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평가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어머니를 숨지게 한 친척 등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고향집이 있던 지역의 이름을 가명이나 익명으로 처리했다. 또 헤어진 전 남편에게 피해를 입을 것이 두려워 자신과 딸의 얼굴이나 사는 곳이 알려지기도 두려워했다. 김씨는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내 인생을 한탄하거나 누군가에 대해 분노감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과거 속의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알아보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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