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클라호마 폭파’로 기승이던 민병대운동 쇠퇴
노먼 올슨은 자신이 조직한 북부 미시건 지역민병대를 지난 주 해산시켰다.
오클라호마시티 폭파사건의 공범 테리 니콜스를 지난 1994년 만났고(올슨은 나중에 폭파사건을 비난했다) 1995년에는 "2년 후 미국의 연방헌법은 호력을 상실할 것"이라고 예견했던 올슨은 결국 자신이 만든 민병대의 효력을 정지시킨 것이다.
숲속에서 실시하던 그의 전쟁놀이, 즉 민병대훈련에는 더 이상 사람들이 참가하지 않았다.
"회원들의 관심이 식었다. 이제는 돌아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취미생활을 할 때인 것 같다"
티모시 맥베이가 1995년 오클라호마시티의 연방청사를 폭파, 16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최후 심판의 도래를 믿던 극우단체들은 맥베이를 운명의 시간을 알리러 오는 전령으로 생각했다.
1992년 루비 리지 총격전과 이듬해의 웨이코 사태로 연방정부 및 총기규제에 대한 의혹과 회의는 극에 달했다.
오클라호마시티 폭파사건 직후 "이것은 연방정부가 반테러리스트 법안의 제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저지른 일"이라는 음모설이 퍼졌다.
민병대 조직의 숫자는 폭파사건 이후 무려 네 배나 급증했다.
당시 타임지는 "’사악하고 통베불능인 연방정부’에 대항할 준비가 돼 있다고 답한 민병대원의 숫자는 전국적으로 1,200만명을 상회한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최후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날은 결코 오지 않았다.
맥베이의 사형집행일은 다음 주(16일)로 성큼 다가왔지만 정부에 대한 그의 증오와 한때 궤를 같이했던 민병대운동은 거의 소멸됐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민병대조직 공동의 적으로 간주됐던 빌 클린턴과 법무장관 재닛 리노가 퇴진, 싸울 대상을 잃은 것도 민병대조직 와해의 중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민병대조직에 가담, 군화와 위장복차림으로 산림지대를 누비며 훈련했던, 이제는 중년이 된 대원들은 모두 귀가했다. 이들은 요즘 맥주를 마시며 TV앞에 앉아 게임쇼를 보고 있다.
앨러배머에 자리잡고 있는 인권단체 ‘서던 포버티 법률센터’(SPLC) 잡계에 따르면 미국의 민병대조직은 지난 1996년 858개를 정점으로 지난 해에는 194개로 대폭 감소했다.
오클라호마시티 폭파사건 이후 극우주의자들의 비뚤어진 노선을 전파하면서 기승을 부렸던 악명높은 웹사이트 수십 개도 폐쇄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지도 않는 혁명을 기다리는 데 지쳐 싫증을 느낀 것이다"
SPLC 대변인 마크 포토크의 주장이다.
법집행기관간의 유기적인 협조관계와 단속강화도 민병대운동에 쐐기를 박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연방수사국(FBI)는 국내 테러에 대처, 요원 500명을 새로 채용했다.
수사력 증강과 적극적인 단속으로 오클라호마시티 폭파사건의 모방범죄는 미연에 방지될 수 있었다.
지난 2년 간 상당수의 민병대 지도자들이 교도소로 보내졌다.
이들은 플로리다 송전선 폭파음모, 미시건 연방청사 및 텍사스 포트 후드 육군기지 폭파음모등의 혐의로 적발돼 유지판결을 받았다.
대규모 극우단체에 대한 소송도 이들의 몰락에 일조했다.
인종범죄피해자들을 대변한 SPLC는 아이다호에 있는 백인우월단체 아리안 네이션스를 상대로 한 피해보상소송에서 지난 10월 승소, 이들이 소유하고 있던 20에이커규모의 본부 및 훈련장을 몰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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