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장진호 전투의 생존자 클라이드 퀸(70)씨를 만나러 갔을 때의 일이다. 1시간 가까이 한국전 당시 이야기를 하던중 그가 책상 구석에 꽂혀있던 CD를 꺼내들더니 국악인 김영임씨의 ‘아리랑’을 틀었다. 퀸씨는 어설픈 한국어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를 읊조리더니 얼마 안 있어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도 해봤지만 그는 복받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채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퀸씨에게 있어 한국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칠흑 같은 어둠과 혹독한 추위 속에서 지켜낸 고통의 시간들을 그는 잊지 못하고 있다. 지독한 동상에 걸려 팔다리가 잘려나갔거나 인해전술로 밀려드는 중공군의 칼에 찔려 피를 토하던 전우들의 처절한 모습을 기억하면 ‘차라리 그때 그 자리에서 함께 죽었었으면’하는 생각에 자괴감마저 들 때가 있다고 했다.
6·25전쟁 50주년을 맞아 미 전국에서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을 되새기기 위한 기념행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초대형 전시관이 건축되고 무명용사비가 제막되는가 하면 인천상륙과 흥남 철수작전 등을 기념하기 위한 각종 행사들이 대규모로 추진되고 있다. 미 국방부는 아예 한국전 기념사업단을 만들어 재향군인 단체들과 합동으로 행사들을 펼치고 있다. 한국전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의욕적으로 행사를 추진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에 앞서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생각에 반성과 부끄러움이 앞선다.
6·25전쟁은 ‘우리’의 역사다. 남북정상이 분단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남북의 가족이 만나 이산의 슬픔을 종식시키더라도 6·25전쟁은 언제까지나 ‘우리’의 역사다. 우리가 ‘민감한 사안’으로 인해 지나간 역사에 대한 평가와 의미부여에 인색해 진다면 ‘우리’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렸던 수많은 참전용사와 전몰장병들에게 누를 끼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될 것이다.
클라이드 퀸씨가 흘리는 눈물은 모든 참전용사와 전몰장병 가족들의 눈물이다. 6·25전쟁 50주년을 맞은 이번 주말에 한번쯤은 지나간 역사를 생각해 보고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은 이들에게 감사와 추모의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한 우리의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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