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준우가 만난 셰프들 - 피시테리안 김하연 셰프

피시 샤퀴테리 전문점 ‘피시테리안’을 운영하는 김하연 셰프. [장준우 제공]

염장건조한 민어 뼈. [장준우 제공]
바다를 벗어난 식재료의 시간은 땅의 것보다 빠르게 흐른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소금과 바람, 그리고 연기를 빌려 바다 식재료의 시간을 늦추기 위해 애써왔다. 해안가 지역의 식문화는 곧 생선의 시간을 지연시키기 위한 가공과 저장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을 막론하고 염장과 건조, 발효와 훈연은 인류의 오랜 지혜의 산물이다.
고기를 소금에 절이고 바람에 말려 보존성을 높인 유럽의 육가공품 '샤퀴테리(Charcuterie)'도 그 궤를 같이한다. 차이가 있다면 다루는 식재료가 땅에서 온 것인지 바다에서 온 것인지뿐이다. 다만 바다 식재료는 다루기가 훨씬 까다롭다. 익숙지 않은 내음과 풍미는 자칫 거부감을 줄 수 있기에 많은 요리사가 시도는 하지만 완성도 있게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
목포의 구도심, 낡은 적산가옥들이 군데군데 남은 한적한 골목에 한국 바다의 맛을 새롭게 번역해 내는 곳이 있다. 생선(Fish)과 샤퀴테리를 결합한 피시 샤퀴테리 전문점 '피시테리안(Fishterian)'을 이끄는 김하연 셰프의 공간이다.
민어의 모든 것피시테리안에 들어서면 냉장 케이스에 들어선 커다란 생선뼈가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민어는 김 셰프가 사용하는 주된 식재료이면서 목포를 상징하기도 하는 생선이다. 살코기는 남김없이 샤퀴테리 재료로 사용된다. 두꺼운 등살은 염장 후 건조하거나 훈연을 거치는가 하면, 얇고 지방이 섞인 부위는 고추 스파이스를 넣어 소시지처럼 만든 매콤한 민어 초리소로도 활용된다.
"8㎏ 이상 되는 민어만 사용해요. 그래야 수율도 좋고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거든요. 마케팅 탓에 여름 민어가 최고라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민어가 가장 맛있는 철은 겨울이에요. 살도 단단하고 지방도 적당히 있어서 가공을 해보면 차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죠."
피시테리안의 주요 메뉴 역시 훈제 민어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훈연칩 대신 목포에서 지천으로 자라는 비파나무 잎과 체리나무를 블렌딩해 염장 건조시킨 민어를 훈연한다. 흔히 먹는 훈제 연어와 비슷한 것 같지만 훨씬 더 담백하면서 찰진 식감이 혀에 기분 좋게 감긴다. 먹고 나면 한 점 더 생각나는 풍미다. 민어 껍질과 부레는 말린 후 튀겨서 마치 스페인식 튀긴 돼지껍데기 요리인 '치차론'과 같은 모양과 맛을 낸다. 버릴 것 없이 모든 부위를 식재료로 사용하겠다는 김 셰프의 철학이 담겨 있다.
일본 유학서 되살린 해산물 DNA김 셰프는 본래 미술을 전공했다. 예술고등학교를 거쳐 미대에서 회화를 그리던 그는 20대 후반 무렵 요리로 방향을 틀었다. 평소 취미로 즐기던 요리를 업으로 삼고자 했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국내 레스토랑 주방에 막내로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요리의 기본기부터 익히기 위해 그는 일본 도쿄로 향했다. 핫토리 영양전문학교에 진학해 일식을 전공하던 그에게 정작 방향성을 제시한 것은 화려한 다이닝이 아닌 평범한 슈퍼마켓 매대였다.
"목포 출신이라 해산물에 대한 DNA가 있어서였을까요. 일본에서 줄곧 수산 가공품이 눈에 띄었죠. 마트에 진열된 건조, 훈제, 절임, 통조림 종류가 다양하고 또 맛도 너무 있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한국에도 훌륭한 해산물이 차고 넘치는데, 왜 우리는 원물로만 소비하고 저런 다채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할까 늘 의문이었죠."
귀국 후 서울 망원동에서 일식과 프렌치를 접목한 소규모 식당을 운영하던 그는 2019년 고향 목포로 내려왔다. 지역의 어묵 회사 제품개발팀에 입사해 1년여간 수산 가공 실무를 익힌 그는 2021년, 생선과 샤퀴테리를 결합한 '피시테리' 브랜드를 열며 본격적인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칠전팔기로 찾아낸 생선 맛야심 차게 시작했지만 현실은 숱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초기에는 피시 샤퀴테리를 다루던 호주나 유럽 셰프들의 레시피를 참고하며 시작했지만 결과는 번번이 실패였다. 부패를 막기 위해 염도를 높게 두는 서양식 샤퀴테리의 방식은 한국인의 입맛에 지나치게 짰다.
"처음에는 짜서 못 먹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참고할 데이터가 없으니 1년이 넘게 수많은 생선을 염장하고, 썩혀서 버리고, 짜서 버리는 과정을 반복했어요. 돈도 그때 많이 버렸죠."
대중적인 수준으로 염도를 낮추면서도 보존성을 유지하고, 동시에 감칠맛을 끌어올리는 적정선을 찾는 것이 당면 과제였다. 원물인 생선도 계절에 따라 맛과 탄성이 달라 변수가 많았고, 필수 재료인 소금 역시 정제염이냐 천일염이냐에 따라 결과물의 풍미가 달라지기 일쑤였다. 갖은 연구 끝에 적절한 맛과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는 데이터와 경험을 얻은 그는 자신감과 동시에 확신을 갖고 궤도에 올랐다. 민어 외에도 전복이나 참치, 홍합 등 지역 위판장에서 취급하는 지역의 식재료도 꾸준히 연구개발 중이다.
저온에서 장시간 쪄낸 뒤 비파나무 연기를 입힌 훈제 전복은 김 셰프의 섬세한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메뉴다. 무화과 잎을 우려낸 오일과 함께 입에 넣으면 코코넛이나 바닐라를 연상시키는 단향과 함께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전복의 색다른 매력을 마주하게 된다.
생선 가공품임에도 해산물 특유의 냄새를 무리하게 지우려 하지 않는 것은 피시테리만의 굳건한 원칙이다. "되도록이면 해산물이 가진 특유의 향을 억지로 없애거나 지우려 하지 않아요. 좋은 원물을 제대로 관리해서 가공하면 기분 나쁜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배웠죠. 식재료가 가진 뉘앙스를 자연스럽게 살리되 특별히 배합한 향신료로 향이 튀지 않고 균형을 맞추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요리에 중요한 건 꾸준함"참고할 선례가 없는 장르를 개척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고단함을 수반한다. 그는 생산자와 직거래로 원물을 수급하고 염장, 훈연, 건조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홀로 감당했다. 초기에는 위판장 상인들조차 '멀쩡한 생선으로 무슨 짓을 하냐'며 의아해할 정도였다. 이 외로운 과정을 버티게 한 동력은 결국 꾸준함과 요리사 스스로의 확신이었다.
"요리를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은 꾸준함이라고 생각해요. 초기엔 저 스스로도 '이 방식이 과연 통할까' 의심이 많았어요. 그러다 어느 날 완성된 결과물을 맛보고 '이 맛이라면 무조건 된다'는 강렬한 확신이 생겼죠. 스스로 완벽히 설득된 맛을 찾았다면, 무리하게 속도를 내기보다 묵묵히 끝까지 밀고 가는 겁니다. 확신을 갖고 꾸준히 이어가다 보면 결국 닿게 되더라고요."
익숙지 않은 장르의 음식임에도 피시테리 온라인 스토어에는 후한 평점이 이어진다. 의아한 시선을 보내던 지역 상인들도 지금은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다.
"평소 회를 전혀 못 먹고, 생선 특유의 냄새는 더 싫어했지만 마치 좋은 생햄을 먹는 것 같다는 피드백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거부감 없이 와인 안주로 즐기시는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안정 궤도에 오른 피시테리안은 조만간 새로운 확장을 앞두고 있다.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더 넓은 공방으로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대물 민어를 해체하며 발생하는 톤 단위의 뼈와 머리를 푹 고아내어 해산물 간장과 곰탕 육수를 만드는 프로젝트도 함께 진행 중이다.
지역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맛을 꾸준하게 만들어내며 자신만의 장르와 정체성을 구축한 김하연 셰프. 가까운 미래에 그에게 영감을 받은 요리사들이 각자의 지역에서 개성과 환경을 담아낸 다채로운 피시 샤퀴테리를 선보이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피시 샤퀴테리 플래터.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훈제민어, 민어 초리소, 무화과, 토스트, 민어껍질 칩, 부레 치차론. [장준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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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우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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