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 USC 총장의 취임은 개인의 이력이나 성취를 넘어 하나의 사건으로 읽힐 필요가 있다. 이번 임명은 단순히 특정 인물에 대한 평가라기보다 미국 고등교육의 중심부에서 한인 2세가 제도적으로 어떤 위치에 도달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그가 정식 총장으로 임명된 다음 날 진행된 대면 인터뷰(본보 6일자 보도)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장소는 USC 메인 캠퍼스 보바드 행정관 총장실. 인터뷰 전 몇 분간 사진을 위한 자리와 조명 각도를 조율하는 과정이 있었고, 별도의 연출이나 과장된 장면은 없었다. 현장은 ‘역사적 순간’이라는 수식어보다는, 이미 예정된 일정 하나가 실행되는 자리라는 인상이 강했다. 직원들 역시 친절했지만, 신임 총장 임명 후 자연스레 이어지는 일정 중 하나를 소화하는 느낌이었다. 이 점은 오히려 이번 임명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상징은 크지만, 절차는 일상적이었다.
김 총장은 자신이 USC 역사상 첫 한인·아시안 총장이라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 의미를 개인의 서사로 확장하는 데에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는 정식 총장 임명이 한인사회에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영광스럽다는 소감을 전하면서도, 그 상징을 앞세워 의미를 확대하려 하지는 않았다. 인터뷰에서 반복된 표현은 ‘영광’보다 ‘책임’에 가까웠다.
부모 세대의 이야기가 언급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 후반 USC에서 유학했던 두 부모, 연세대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온 부친과 LA 공립학교 교사였던 모친의 이력은 개인적 배경 설명 차원에서만 다뤄졌다. 이는 흔히 기대되는 ‘이민 성공담’의 구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가족사가 강조된 이유는 개인의 특별함을 부각하기보다는, USC와 한 가정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맺어온 관계를 설명하는 맥락에 가까웠다.
이번 임명을 바라보는 한인사회의 시선은 자연히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USC라는 상징성을 지닌 대학의 수장 자리에 한인 2세가 올랐다는 사실은 분명 주목할 만하다. 이는 한인사회가 정치·법조·경제 영역을 넘어, 학문과 교육 행정이라는 제도권 핵심 영역에서도 일정한 존재감을 갖게 됐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의미는 ‘자랑’이라는 감정으로만 정리되기에는 단순하지 않다.
김 총장의 임명은 단순히 한 개인의 약진이 아닌, 한인사회 전체가 미국 사회의 제도적 구조 속에 어느 정도 편입됐는지를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에 가깝다. 다시 말해, 이번 임명은 ‘처음이기 때문에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제도 안에서 차분히 처리될 수 있는 변화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볼 수 있다. 상징이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상징의 성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감탄의 대상이 아니라, 구조 변화의 신호로 읽을 수 있는 지점에 와 있다는 의미다.
이번 사례는 이제 이런 임명이 ‘예외적 사건으로만 남지 않는 단계에 접어들었는가’를 묻는 계기다. 한인사회가 이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번 임명의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캠퍼스는 평소와 다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학생들은 강의실로 향했고, 대학의 일상은 개인의 임명 여부와 무관하게 이어졌다. 김병수 총장의 취임 역시 그런 흐름 속에 놓인 하나의 장면일 것이다. 다만 그 장면이 한인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 임명을 개인의 성취로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공동체의 위치 변화를 점검하는 계기로 삼을 것인가.
‘최초’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이 사라진 뒤에도 남는 질문이 무엇인지, 이제는 그 지점에 시선을 둘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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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형석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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