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5년 전 일이다. 나의 고교동기 소설가 고 최인호가 소설 ‘유림’을 쓰기위해 3년동안 수십권의 책을 읽고 자신이 쓴 소설중에 가장 긴 장편소설을 썼다며, 이 소설을 쓰면서 그는 많이 행복했다고 했다.
나에게 한질을 보내주면서 “동기를 부여해주고 귀한 도움을 줘서 고맙네. 역시 정암의 후예답네”라며, 그는 독일의 사상가 피히테가 ‘독일 국민에게 고함’을 썼듯이 ‘조선 국민에게 고함’을 이 소설을 통해 옮겨보겠다는 심정으로 ‘유림’을 썼다고 했다.
이 소설은 공자의 이상적인 왕도정치를 실현시키고자 목숨을 걸고 “낡은 정치를 개혁하려던 선각자요, 실천가로 노력하다 젊은 나이에 죽임을 당한 순교자”(작가의 표현)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공자도 자기 사상(이상적 왕도정치)을 정치에 접목하려다 실패했고, 맹자도 역시 같은 길을 갔으나 실패했고, 정암 역시 뜻을 이루지 못하고 39세에 사약을 받고 짧은 생을 마쳤다.
정암이 죽기 전, 친구 피색장(皮色匠) 갖바치가 손수 만들어 자신에게 선물한 가죽신(한짝은 흰색, 다른 한짝은 검은색의 짝짝이 신발)을 신고 묻혔다. 그러함에도 후세 사람들은 그를 흰신을 신은 사람으로 어떤 이는 검은신을 신은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
“모난 돌이 정맞는다”는 말로 “둥글둥글하게 살며 타협하는 정치를 하지 않고 왕의 총애를 등에 업고 과격하게 개혁을 밀어부친 지혜(?)롭지 못한 아마추어 정치가였기에 그런 꼴을 자초했다”고 그를 평하기도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이 모르는게 있다. “둥근 돌은 굴러 떨어진다”는 이 말을⋯.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르다에는 정답은 없다. 각자의 가치관과 처세관, 인격에 따라 평가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좁고 험한 곤고의 길을 택했는가 아니면 쉽고 안이하고 넓은 길을 택했나에 따라 후대의 평가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정암 조광조처럼 개혁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정치가가 역사에 또 있었는가? 진정한 개혁은 스스로의 개혁에 있는 것이다. 개혁하고자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개혁하려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치판은 예나 다름없이 서로 죽이고 살리고 모함하고 헐뜯고 추잡한 권모술수가 판치고 거짓이 난무하는 곳이다. 깨끗한 사람이 몸붙일 곳이 못된다. ”까마귀 우짓는 골에 백노야 거지말라“라 하지 않았던가?
양반과 상놈의 신분이 엄격하던 시대에 한갖 피색장 갖바치의 인물됨을 일찍 알아보고 우정울 나누었던 정암의 인품도 개혁가 다웠지만 조정의 대신인 정암에게 짝짝이 신발을 선물한 갖바치 또한 앞을 내다볼 줄 아는 큰 인물이었다. 그가 손수 지어준 짝짝이 신발을 신고 묻힌 정암!
“천년 세월도 검은 신을 흰신으로 바꾸지는 못하는구나.” 짝짝이 신 한켤레와 함께 정암에게 선물한 갖바치의 이 글은 500년이 훨씬 지난 오늘 날에도 우리에게 울림이 크며 시사하는 바가 의미심장하다. 검은신이면 어떻고 흰신이면 또 어떠랴? 발에 잘 맞고 편한 신이면 좋은 신발인 것을⋯
색깔이 무엇이며 우(右)면 어떻고 좌(左)면 어떤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법과 도덕과 자유와 정의가 살아있어 백성이 편하고 평화로이 잘 먹고 잘 살수 있게 한다면 그것이 좋은 정치요 그런 나라가 좋은 나라인 것을⋯
지난 문정권에 이어 현정권의 개혁은 국민들을 위한 개혁이 아니라 자신과 그들 집단의 권력 독점을 위한 구호에 지나지 않았으며 부정과 부패로 대한민국은 지금 범죄조직이 국가를 장악한 최초의 합법적 사례로 역사에 남을 것이며 이제 대한민국 국민은 자유를 포기한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지 배워야할 시간이다.
갖바치와 정암의 영혼이 통하는 크고 깊은 우정, 그들과 같은 큰 사상, 큰 글, 큰 사람들이 그립다. 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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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렬/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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