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중앙은행장들 진단
▶ 팬데믹·전쟁, 경제 작동방식 바꿔…고금리·고물가 ‘뉴 노멀’ 될 것, 올들어 80개국 이상 금리 인상
지난 29일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연례 포럼에서 제롬 파월(오른쪽 두 번째부터)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과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가 토론하고 있다. [로이터]
미국과 유럽·영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 수장들이 ‘저금리·저물가’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선언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비롯한 중앙은행 총재들은 세계경제가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지정학적 충격을 거치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환경과 마주하게 됐다면서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고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전 세계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기준금리를 끌어올리는 모습을 이제 ‘뉴노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달 29일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개최한 연례 포럼에 참석한 파월 의장과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앤드루 베일리 영국 중앙은행(BOE)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상수’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파월 의장은 “경제가 팬데믹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힘에 의해 작동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팬데믹이 완화되고 경제가 재가동되기 시작했음에도 글로벌 공급망 문제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은 수요 회복으로 가파르게 오르던 연료비에 기름을 부었다면서 공급난과 연료비 급등으로 인해 “저물가 시대는 끝났다”고 진단했다.
라가르드 총재도 “팬데믹과 지정학적 충격으로 인해 저물가 시대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동조했으며 베일리 총재는 “경제 작동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sea change)’가 생겼다”고 짚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들의 발언을 전하며 “새로운 인플레이션 시대가 도래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환경 변화로 세계 각국의 금리 인상 행렬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밟은 파월 의장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경기 침체 우려에 대해 “금리 인상 과정은 고통을 수반할 가능성이 높지만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밝히며 가파른 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른바 ‘연착륙’이 한층 도전적인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시인하면서도 “금융시장이 긴장되더라도 경기 후퇴를 피해 잘 헤쳐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30일 발표된 미국의 5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6.3% 증가해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심각함을 나타냈다.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5월 근원 PCE 가격지수도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4.7% 올라 치솟은 유가 영향을 빼고도 물가가 고공 행진 중임을 재확인했다. 특히 5월 월간 PCE 가격지수 상승률은 0.6%로 4월(0.2%)보다 3배 증가했다.
반면 5월 PCE는 전월보다 0.2% 증가해 0.9%의 월간 상승률을 나타낸 4월보다 크게 꺾였다. 특히 물가 상승분을 제외한 실질 PCE는 5월 전달보다 0.4% 감소해 팬데믹 기간이었던 지난해 12월(-1.4%)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세로 돌아섰다. 미국에서 고물가가 계속되는 반면 경제를 떠받치는 소비는 감소해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연준이 6월에 이어 7월에도 0.75%포인트의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에 한층 힘이 실리고 있다. 이날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당장 FOMC 회의가 오늘 열린다면 금리를 0.75%포인트 올려야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올 7월 11년 만에 ‘제로 금리’에서 벗어나겠다는 계획을 이미 밝힌 ECB의 라가르드 총재도 이날 “ECB의 인플레이션 대응이 현재의 ‘점진적인’ 수준에서 더 단호해질 것을 요구받고 있다”고 말해 당초 예상보다 공격적인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ECB는 앞서 9일 통화정책 회의에서 7월 중 현재 0%인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고 9월에도 재차 인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시장에서는 ECB가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보다 강력한 긴축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7월 통화정책 결정을 앞둔 미국과 ECB 중앙은행 총재들이 입을 모아 고물가 해소를 위한 금리 인상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나서면서 이날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장중 1달러에 137엔대에 거래돼 1998년 9월 이후 24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일본 중앙은행이 6월 금리를 -0.1%로 동결하며 심각한 엔저(엔화 가치 하락)의 원인으로 지목된 ‘마이너스 금리’ 기조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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