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준걸 전 시애틀한인회장의 85세 생일잔치에서 참석자들이 다같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오준걸 전 시애틀한인회장의 85세 생일 잔치가 큰 축복 속에 열렸다.
오 전 회장의 생일 잔치는 지난 9일 페더럴웨이 해송 식당에서 오 전 회장이 40여년 동안 봉사하고 활약해왔던 단체 회원과 친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수잔 회장과 영 브라운 수석 부회장, 박명래 부이사장 등 시애틀 한인회 임원 이사는 물론 조기승 회장과 김준배ㆍ홍승주ㆍ강석동ㆍ유철웅ㆍ한원섭ㆍ강희열ㆍ민학균 전 회장 등 시애틀한인회 멤머들이 참석했다.
이영부ㆍ신광재ㆍ김영일ㆍ`김재욱씨 등 한인회장 출신 골프모임인 PGC 회원들, 오 전 회장의 배재학당 동문들, 심재환 전 평통 시애틀협의회 간사, 고향 친구인 코앰TV 고종제 사장 등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서북미 한인사회 지도자로 오랫동안 봉사했던 오 회장의 헌신에 감사를 표하고 건강일 기원했다.
오 전 회장은 서북미 한인사회에서 유일하게 시애틀 한인회장과 오리건 유진 한인회장 등 2곳의 한인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또한 민주평통 시애틀협의회 회장과 초대 워싱턴주 한인의 날 축제 준비위원장 등을 지내는 등 한인사회 발전에 남다른 공헌을 했다.
한양대 출신인 오 전 회장은 1963년 8월 인천항에서 청운의 꿈을 안고 미국 군함을 타고 13일 만에 샌프란시스코 항에 도착해 유학을 한 뒤 이후 미국에 정착, 58년 동안 살고 있다.
오 전 회장은 이날 축하연에서 부인 오혜리씨와 함께 윤동주 시인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란 시를 낭송한 뒤 “58년 동안 미주 동포로 살면서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봉사할 수 있었고, 말년에는 골프를 치며 즐길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오 전 회장은 특히 자신의 인생역정에 대해서도 소개해 자리를 숙연케했다.
일제 강점기였던 유년기에는 일본인들에게 밉보여 수모를 당했고, 8ㆍ15 광복의 기쁨도 잠시 6ㆍ25 한국전을 겪으면서 1ㆍ4후퇴때 일가친척 모두 학살을 당하는 고통을 겪었다.
특히 부모 형제를 북한에 남겨두고 평생을 한으로 살았으며 280리를 걸어 38선을 넘어 남하를 했으며 13살 어린 나이에 울분을 참지못해 북한의 선전매체인 삐라를 찢어 고문을 받다 죽을 뻔했던 경험도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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