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춘 전 회장(사진)
지금의 한미현대예술협회를 태동 시켰고 전시기회가 많지 않았던 한인 작가들의 활동영역을 넓혀주는 등 최대식 전회장이 한인 미술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1998년 그를 처음 만나 한인 미술계에서 그가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면 그는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한 예술가였고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1998년 뉴욕, 뉴저지, 필라델피아에서 참석한 한인 작가 70여명이 모임을 결성하고 뉴저지에서 40여명이 참여한 그룹전을 개최하면서 협회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무렵, 그는 정관을 만들고 비영리재단으로 등록하는 등 친목 위주에서 벗어나 정식 협회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도록 초석을 다졌던 인물이다.
그의 추진력은 그 누구도 따라 오지 못할 정도였고 매일 아침 전화를 걸어와 자신의 아이디어를 쏟아내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던 그를 지금도 기억한다.
초대회장과 2, 3대 회장을 맡았던 그가 2004년 한국 산업대 교수로 부임하는 바람에 졸지에 회장직을 맡았던 당시 그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 쉽지 않을 만큼 그는 정말 많을 일을 해냈었다.
무엇보다 회원 뿐 아니라 많은 한인작가들에게 전시기회를 마련해주는 등 정말 왕성하게 일을 했다.
특히 2003년 작고한 1세 작가부터 2세까지 100여명이 참여한 전미주한인백주년기념 도록 발간과 이민100주년 기념 그룹전 기획 등은 그의 추진력과 예술에 대한 열정이 빚어낸 성과라 할 수 있다. 너무 아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나 애석함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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