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LA 특파원으로 마주한 미주 한인 사회는 역동적이면서도 치열했다. LA 한인상공회의소부터 세계한인무역협회(OKTA) LA, 한국기업협회(KITA), 그리고 현대차·기아 등 주류 시장을 흔드는 대기업의 현장까지, 수많은 삶의 궤적을 목도했다. 거대한 미국 땅에서 맨손으로 일구어낸 이민자들의 피땀 어린 발전상과 저력을 눈앞에서 지켜본 것은 커다란 영광이었다. 하지만 화려한 불빛 뒤에 가려진 현장의 그림자 또한 짙었다. 귀국행 비행기를 앞두고, 지난 2년의 취재수첩에 묵혀두었던 뼈아픈 고언을 꺼내 들고자 한다.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한인 단체들의 고질적인 분열과 불협화음이다. 공익을 도모해야 할 단체들이 감투 싸움과 친목 도모라는 명목하에 우후죽순 난립했고, 회계 절차의 불투명성은 늘 도마 위에 올랐다. 화합하지 못하는 이들의 모순은 선거철마다 극에 달했다. 단수 후보가 나오면 “민주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하고, 경선으로 두 명이 나오면 “화합하지 못하고 갈등을 조장한다”며 핏대를 세운다. 이처럼 방향타를 잃은 소모적 내홍 속에서 정작 한인 사회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 마련은 늘 뒷전으로 밀려났다. 각 후보들이 선거에서 내세우는 공약들도 ‘네트워크 강화’, ‘화합’, ‘한인 경기 개선’ 등 매번 똑같다. 후보들도 회전문 인사로 그 나물에 그 밥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각 단체들이 1.5세, 2~3세 한인들에게 ‘꼰대들의 집합소’라는 비판을 받으며 외면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진짜 위기는 한인타운의 턱밑까지 차올랐다. 현재 LA 한인타운의 경제 체력은 역대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남긴 상흔은 여전히 깊고, 회복의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공실이 넘쳐나고 치안이 붕괴된 인근 다운타운(DTLA)의 몰락은 남의 일이 아니다. 기자 역시 다운타운의 노숙자들과 범죄 그림자가 한인타운 경계를 넘어 밀려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한인타운이라는 견고한 방어선이 무너지는 순간, 다운타운의 전철을 밟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인타운의 치안은 결국 한인들이 지켜내야 한다. 주류사회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인들이 정치적인 응집력을 강화해 이뤄내야 할 과제다. 이미 한국에서 LA는 ‘치안이 극도로 위험한 도시’로 각인되고 있다. 여기에 살인적인 고환율, 국립공원 입장료 인상 등까지 겹치며 미국은 한국인들에게 매력도가 떨어지는 여행지가 됐다. 혹자는 “한국에서 이민과 유학이 줄어 한인타운의 경기가 안 좋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인 경기는 주류 사회 또는 외부인들이 아니라 한인들 스스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미국을 이민과 유학 오기에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야 할 책임도 결국 미주 한인들에게 있다. 외부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방관자적 태도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연방정부의 무리한 정책이나 현 상황을 그저 피동적으로만 받아들이는 한인 사회의 무기력함이다. 지난 2년간 지켜본 미주 한인 사회는 총기 불안, 마약, 활개 치는 강도 사건을 두고 “세계 최고 선진국 미국에 사는 대가”라며 수용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 나라는 원래 그래.”라는 체념 어린 태도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미국 주류 사회는 우리의 고통을 결코 알지 못하며, 먼저 도와주지도 않는다. 우리가 체념하고 침묵하는 순간, 안전과 경제적 피해의 부메랑은 고스란히 이곳에서 살아갈 1.5세대, 2세대, 그리고 그 다음 후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더 적극적으로 조직화하고, 더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여 권리를 요구해야 한다.
특파원 임기를 마치며 쓴소리를 남기지만, 그럼에도 필자는 한인 사회가 가진 저력을 굳게 믿는다.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늘 길을 찾아냈던 한민족의 DNA가 여전히 우리 안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LA를 떠나서도 미주 한인 경제의 단단한 도약과 내일의 건승을 늘 가슴 깊이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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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용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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