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최대식 한미현대예술협회 초대회장 <지난 5월12일 별세, 향년 73세>
▶ 한인작가 모임 필요따라 1999년‘한미현대미술협회’창립, 한미청소년미술대전 등 한인사회 각종 행사 기획·추진

2015년 본보 회의실에서 한국일보 특별후원으로 열린 제2회 고미술품 감정 행사에서 주최측인 한미문화유산보존회 최대식(왼쪽 3번째) 회장.

고 최대식 작가
최대식 작가는 홍익대와 중앙대 공예과를 졸업한 대한민국 국전 특선작가이며 1972년 동아공예대전 금상을 차지했고 1978년 도미했다.
2004년까지 한미현대예술협회 회장을 지낸 후 한국으로 귀국, 2005-2007 서울산업대 금속공예과 겸임교수, 2005-2012 중앙대 예술대학 금속공예과, 문화예술경영학과 초빙교수, 2010 풍덩예술학교 교장을 지내고 한국에서도 활발한 전시활동을 한 후 13년만인 몇 년전 뉴저지에 안착했다.

2007년 한국일보가 특별후원한 뉴욕국제공예미술박람회 ‘S.O.F.A.New York 2007’ 한국관에서 작품을 전시중인 최대식 작가 (왼쪽 두 번째0
서양 중견화가이자 금속공예가로 뉴욕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한미현대예술협회 초대회장과 2,3대회장을 지낸 최대식 작가는 한인 작가들의 전시회를 다수 기획하며 많은 활동을 했다.
1998년 맨하탄 소호에 미동부 지역에서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는 중견작가들이 모여 전시장 찾기가 어려운 한인작가들을 돕는 모임의 필요성을 제기, 한인작가 모임을 결성했다. 이어 1999년 4월 비영리단체로 등록후 초대 최대식 회장을 중심으로 뉴욕, 뉴저지, 필라 등 미동북부 지역 미술가들이 모여서 ‘한미현대미술협회’가 창립됐다.
서양화, 믹스미디어, 한국화, 문인화, 서예, 조각, 사진, 설치공예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몰려들면서 2000년 협회 이름도 ‘한미현대예술협회’ 로 개칭, 모든 예술인들에게 참여의 문호를 개방했다.
최 작가의 눈부신 활약은 이때부터 발휘됐다.
한인 젊은 작가 발굴과 청소년들의 미술 영역에 참여를 도모하고자 매년 한국일보 주최, 한미현대예술협회의 주관으로 열리는 한미청소년미술대전과 한국일보 문화센터 제휴 ‘현대아카데미’, 대규모 행사인 2003년 이민100주년 기념 도록 발간 및 한인작가 그룹전 등 그가 추진하고 기획한 행사들이 한인 사회와 미술계에 많은 빛을 발했다.

뉴저지 자택에 마련된 라피엣 파인아트센터를 가득 채운 고인의 작품들.
그의 생전 꿈은 미술관을 짓는 일이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지난 12일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뉴저지 서섹스카운티에 있는 자신의 집을 눈부신 작품들로 가득 채웠고 유작 3점을 마무리중이었다.
그는 늘 아이디어로 넘쳐 났고 그 아이디어를 곧장 실천으로 옮기는 그의 추진력은 그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다는 것이 지인들의 평가다.
한국에서 활동중에도 한미문화유산보존회 회장을 맡아 2013년 본보 특별후원으로 한인들의 희귀 미술품을 감정해주는 ‘한국 고미술품 감정’ 행사를 뉴욕에서 열어 큰 성공을 거두고 한인들의 호응에 힘입어 2년뒤 뉴욕과 워싱턴 DC에서 또 한차례 고미술품 감정행사를 성황리에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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