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 운동가 고 김 건씨. 딸 김연실 씨 100주년 맞아 감회 깊어

해는 3.1절 100주년을 맞아 김연실 씨가 아버지 고 김 건 씨의 3.1운동 활동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독립 운동가 고 김 건씨.
가든그로브 인근 수정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김연실(87)씨는 3.1절이 되면 아버지 생각이 절로 난다. 특히 올해는 3.1절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인 만큼 김 씨는 아버지의 모습이 더욱더 간절하게 떠오른다.
지난 1997년 작고한 김씨의 아버지 김건 씨(전 건국대 명예교수)는 1900년 생으로 3.1 운동이 발발한 19세의 나이에 당시 숭실 중학교 교정에 손수 만든 대형 태극기를 게양하고 평양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만주로 도망갔던 독립운동가 였다.
고 김 건 씨가 숭실 중학교에 게양했던 태극기는 일제에 발각되어 압수될 위기였지만 당시 미국인 교장이었던 새무엘 모페트가 ‘우리학교 물건이니까 손대지 말아 우리가 보관하겠다’라고 말해 일경에게 빼앗기지 않고 보관하다가 그의 장남 제임스 모페트가 아버지 유언에 따라서 지난 1974년 김 씨에게 되돌려 주었다.
이 같은 스토리는 그 당시 한국의 신문과 방송에 태극기를 든 김씨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보도 되기도 했다. 특히 KBS 방송은 김 씨의 3.1운동 당시의 독립 운동과 태극기 반환에 대한 얘기를 다큐멘토리로 소개했다.
김 씨는 숭실 소학교 4학년 때 한일 합병 당시 조만식 선생으로부터 들은 마지막 태극기 하강식 순간에 들었던 “너희들 손으로 끌어내린 태극기를 언젠가는 너희들 손으로 반드시 올릴 수 있어야 한다”라는 말을 회상하고 학교에 게양한 태극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딸 김연실 씨는 “3.1절 100주년을 앞두고 아버지 생각이 너무나서 예전에 났던 신문 기사와 사진 등을 찾아 보았다”라며 “3.1절 100주년을 맞이해서 아버지의 3.1절 독립 운동 활동 사항을 알리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김연실 씨는 또 “아버지는 살아 생전에 가족과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독립 유공자로 신청을 하지 않았다”라며 “당시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죽은 사람도 있는데 살아 있는 사람이 창피해서 국가의 돈을 받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씨에 따르면 아버지가 만든 태극기는 현재 독립 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다.
한편 고 김 건 씨는 만주, 일본 등지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경신학교와 정신여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후진 양성을 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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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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