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5월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중국계와 말레이계 주민들 간에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경제를 장악한 중국계에 소외감을 느끼던 말레이계 민족이 1969년 5월10일 실시된 총선거에서 저조한 성적을 낸 것이 발단이었다.
총선 때 약진한 중국계 정당들이 축하 퍼레이드를 하는 과정에서 말레이 주민들을 조롱하자 폭동이 일어나 유혈극으로 번졌다. 이로 인해 툰쿠 압둘 라만 총리가 사퇴했다. 이듬해인 1970년 집권한 압둘 라자크 후세인 총리가 말레이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내놓은 것이 ‘부미푸트라 정책(Bumiputra policy)’이다.
라자크 총리는 유혈사태의 근본원인이 소득 불균형과 사회적 지위 차이에 있다고 보고 빈부격차를 줄이는 데 주안점을 뒀다. ‘땅의 자손’이라는 뜻을 가진 이 정책으로 말레이시아는 기업체에 말레이계 지분 30% 이상을 보장하도록 하는 한편 말레이 주민들의 취업을 확대하고 대학교 정원의 70%를 부미푸트라에게 배정했다.
주택을 분양할 때는 10% 할인까지 해줬다. 이를 통해 1970년 1.5%에 불과했던 전체 국부 가운데 말레이계의 비중은 최근 30%까지 높아졌다.
모든 정책이 그렇듯이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기 마련이다. 정치와 경제·교육 등 거의 모든 생활에서 말레이계를 우대하는 정책이 50년이나 지속되자 요즘에는 소수민족인 중국·인도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규제 때문에 외국인 투자가 줄어드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자 정책 폐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요구에 기름을 부은 것이 5월에 치러진 총선이다. 마하티르 모하맛이 이끄는 희망연대는 총선에서 ‘다민족 융화정책’을 내세워 61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그는 부미푸트라정책의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마하티르 총리는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인권보호와 관련한 유엔의 모든 협약을 비준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말레이시아에서 민족갈등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마하티르 총리가 피부색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유엔 인종차별철폐협약(ICERD) 비준 의사를 밝히자 야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 등은 오는 8일 쿠알라룸푸르에서 수십만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 계획이다. ‘말레이계 우대’와 ‘민족융화’ 사이에서 마하티르 총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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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수 서울경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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