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한바탕 바쁘게 식구들을 일터로, 학교로 보내고 혼자 남은 오전, 뜨거운 커피를 한 잔 내려 도톰한 머그컵에 가득 채운다. 쓴 맛에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다. 그제야 한숨을 돌리는 듯하다. 아이가 남긴 사과 한 쪽을 먹으며 하루 일정을 확인한다.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그날은 집안 살림하는 날이다.
살림살이는 과연 노동계의 화수분 같다. 작년에도, 지난 달에도, 지난 주에도, 그리고 어제도 했는데 절대 없어지질 않는다. 게다가 과거에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늘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마법같은 일이 살림살이라고 혼자 중얼거린다. 무엇이 되었든 지루한 일 앞에서는 일단 마음부터 추스려야 한다. 힘을 내고 싶을 때이므로 '부지런함’과 ‘긍정적’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넣어 준다. 잠시 망설이다 '현모양처'라는 단어도 넣고 모두 마음의 연료로 태운다. 그럼 나는 긍정적이고 부지런한 현모양처로 변신하여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방법과 순서를 짠다. 이 효율 만점인 노동 계획을 따라 일을 하고 있자면 곧 지루함 대신 그 자리에 피곤함이 속속 내려 앉는다.
그러면 보고 들은 것 많은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멸치를 부어 넣으면 머리랑 똥만 쏙 빼 주는 기계 상상, 채소 넣고 버튼만 누르면 각종 크기로 썰어져 나오는 채 써는 기계 상상, 매트리스 멸균 기능을 탑재하고 때마다 이불 커버를 갈아주는 인공지능 침대 상상, 쌓인 먼지를 스스로 빨아 들이는 베큠 일체형 마루바닥도 좋겠다. 요즘 세상이 발전해서 무인 자동차도 개발했다던데 아이들 학교 라이드 기능도 넣으라고 알려줘야겠다. 그럴 게 아니라 아예 ‘주부형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하는 건 어떨까? 아무래도 실리콘 밸리에 사는 주부답게 나도 다들 한다는 스타트업 기업 하나 차려야겠다.
명절이 되면 전 부치기 특별 기능을 가진 ‘한정판 이모님 로봇’도 출시해야지. 그럼 주부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으며 금새 알토란 기업이 될 것이다. 아, 나는 주부들의 인생을 한껏 업그레이드 시키며 큰 돈도 벌게 되겠구나! 큰 돈 생기면 무얼할까? 머릿속으로 상상이 날개 돋힌 듯 뻗어나가는 중에 집안일도 어느덧 끝이 났다. 둘러보니 정돈된 집과 준비된 저녁, 고즈넉한 햇살로 집안은 한결 더 아늑하다. 피식, 한 번 웃고는 귀가할 가족들을 기다린다.
<한연선(교육학박사 ABD)>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