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식당 아주머니가
청국장 백반을 이고 온다
신문지 한 가운데 둥근 투가리에서
김이 폴폴 오르고, 그걸 맛보겠다고
하느님이 눈발이 되어 뛰어내린다
하느님도 무게가 제법인지
아주머니가 허리를 펴고 멈춰 선다
여관 신축공사장 삼층으로 오르면
눈발 하느님은 국물도 없을 것이다
시멘트 범벅인 장화 하느님들이
단체손님을 받을 제일 큰방에서
신문지를 확 걷어치울 것이기 때문이다
삽 자루나 질통에 이마를 부딪힌 채
선배님들의 입 속으로 후룩후룩 넘어가는
청국장을 아름다이 바라볼 것이다
그들 가운데 젊은 운동화가
컵라면 빈 그릇에 남은 반찬을 쓸어 담아
소주 됫병 옆에 밀어놓는다
저걸 한 모금 들이켰으면 좋겠다고
눈발 하느님이 몸서리를 치자
크윽, 눈길도 없이 녹아버린다
이정록 (1964- ) ‘청국장’ 전문
신축공사장 노동자들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진다. 김이 폴폴 오르는 청국장을 이고 3층 공사장을 오르는 아주머니와 시멘트 범벅인 베테랑 노동자들, 그리고 아직 풋풋한 젊은 일군들이 모여 사는 세상은 결코 쉽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오직 노동하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건강하고 소박한 기쁨이 있다. 그것은 시인의 해학적 눈길에 의해 즐겁게 시화된다. 하느님조차 입맛을 다시며 너머다 보는 저 광경, 휘몰아치는 인생의 눈발을 자취 없이 녹여버리고 있지 않은가. 임혜신<시인>
<
이정록>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