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저 사람 어떻게 해!” 보도 중앙에서 물에 흠뻑 젖은 채 비닐봉투를 덮고 자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냉랭했던 그날 아침은 밤새 추적추적 내리던 빗방울이 힘을 더해 쏟아지고 있었다. 나의 탄성에 고개를 돌린 노년의 운전기사가 말문을 열었다. “Do you think he cares about you?”
매달 정부에서 받는 돈을 마약에 허비하며 길바닥 생활을 자처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왜 동정해야 하느냐고 물으며, 그는 이민자로서 일평생 겪어왔던 산전수전의 경험을 토로했다. 그날 아침도 생계를 위하여 고달픈 심신을 추스르며 억지로 집을 나섰다던 그는, 노숙자들은 도전의식이 결여된 이 사회의 한심한 낙오자들일 뿐이라며 비관했다.
‘…그런가?’ 나 역시 수년간 각양각색의 노숙자들을 봐오며 측은함, 안타까움, 답답함에서부터 가끔씩은 위협감과 짜증까지, 여러 가지 감정을 경험했다. 하지만 본인의 처지도 구제하기 힘든 노숙자에게 나까지 걱정해 주기를 바란 적은 없었다. 이유를 불문하고, 그 누구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누워 비와 새똥을 맞으며 전전하는 인생을 자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그들에게 돈 보다는 희망을 주고 싶었다.
우리는 누군가가 잘못했다면 마땅히 응징해야 한다고 믿는 사회에 살고 있다. 다른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사람들, 구설수에 오르는 연예인, 소위 공인이라 불리는 유명인의 말실수, 부정부패의 의혹에 휘말린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맹렬한 질타의 도마에 올린다. 하지만 삶의 의욕이 없는 노숙자에게 단지 돈을 건네는 것만으로는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듯이, 주관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완벽하게 적절한 벌”로서 누군가의 잘못을 바로잡기는 힘들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최초로 탄핵되면서 역사에 두 획을 긋고 퇴장했다. 여성 대통령의 당선은 아직 미국에서도 이루지 못한 마일스톤이며, 국민의 신임을 어긴 대통령의 탄핵은 부패정권에 맞서 이뤄낸 민심의 실현이었다는 측면에서 그녀의 등장과 퇴장은 민주주의 역사에 분명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탄핵의 찬반 의견이 분분했지만, 민간인의 국정개입 허용 및 직권남용을 비롯한 행정부 수반의 잘못을 부정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를 둘러싸고 벌어진 정치적 싸움과 흙탕물 논쟁은 전 국민의 혼란과 울분으로 확산되었다. 결국 이 싸움은 입법부와 정치판을 벗어나 사법부에서 종결되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은 국가 원수를 포함한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탄핵 결정은 말 그대로 공정한 헌법수호를 위한 불가피한 결과였다. 그러나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된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며 환호하는 무리의 반대편에는, 대통령의 파면으로 등장할 새 정권이 민주주의와는 동떨어져 보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한 정치인의 몰락은 한 순간의 정치적 결과일 뿐이다. 앞으로 교체될 정권이 곪아서 썩어 들어간 부패권력을 치유할 올바른 처방이 될지, 더 큰 독이 될지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부작용이 두렵다고 염증을 그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최선의 치료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존의 권력집단에게 기회를 줄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대신할 새로운 지도자를 찾아 힘을 더해줄 것인가의 선택은 국민들의 숙제다.
국민 개개인이 편협한 흑백논리를 버리고, 이성적이고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혜안을 키워야 한다. 우리는 타인의 의견이 다르다고 미워하면서도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은 개성이며 자유라고 이중적인 잣대를 내세운다. 우리가 이해하는 있는 것이면 충분하다고 믿지만 정작 다투고 있는 상대방의 입장은 헤아리지 못한다.
서로의 잘못됨에 냉혹하게 맞서며 태극기와 촛불로 분열되기에 앞서, 사실은 모두가 “더 좋은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본질적인 희망을 공유하고 있음을 기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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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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