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사이언스지에는 유명한 보노보 칸지가 소꿉놀이를 할 수 있다는 논문이 발표되어서 큰 화제가 되었다. 칸지는 애틀랜타 영장류 보호구역에서 1980년에 태어나 2025년 44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언어와 인지 능력에 대한 수많은 연구에 참여했다. 생전의 칸지가 참여한 연구가 바로 지난달에 발표된 논문의 주제다.
연구팀은 칸지가 소꿉놀이를 할 수 있는지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예를 들면, 몇 개의 컵을 늘어놓고 주전자에서 주스를 따라 붓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주전자도 컵도 모두 비어 있다. 그렇게 주전자에서 주스를 따라 붓는 시늉을 한 다음 컵 하나를 들어 바닥으로 주스를 쏟아붓는 시늉을 한다. 그런 다음 칸지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주스가 들어있는 컵은 어떤 것이냐고 말이다. 그 질문을 받는 칸지는 바닥으로 주스가 쏟아져 버린 컵을 가리키지 않고 정확하게 아직 주스가 남아 있는 컵을 가리켰다. 물론 어떤 컵에도 주스는 담겨있지 않다.
연구팀은 칸지가 헷갈린 것이 아님을 확인하기 위해 진짜 주스가 담긴 컵과 담기지 않은 컵을 구별하게 하는 실험도 진행했는데, 칸지는 어떤 컵에 주스가 담겨있는지 정확하게 구별해 내면서도 연구팀의 소꿉놀이에는 기꺼이 장단을 맞춰주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종류의 실험을 여럿 실행하고 각 실험을 반복한 다음 칸지가 소꿉놀이를 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 논문을 발표했다. 심리학 실험이 얼마나 엄격한 실험인지 판단할 전문성이 내게는 없다.
물론 궁금한 점도 있다. 칸지는 평생 인간과 함께 살았으며 수십 년 동안 언어를 배우고 인간과 소통했다. 그러니 칸지가 가지고 있는 소꿉놀이 능력이 얼마나 보노보에게서 일반적으로 관찰될 수 있는 능력인지, 칸지라는 특별한 경우에서만 볼 수 있는 능력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일련의 실험 뒤 작년에 칸지는 세상을 떠났고, 실험 결과는 올해 발표되었으니 적어도 칸지를 통한 후속 연구는 기대할 수 없다.
동물도 소꿉놀이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왜 그렇게 화제가 되었냐면, 바로 소꿉놀이라는 상상의 세계는 인간에게만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모든 생물체는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는다. 의사소통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간을 비롯해 모든 동물들은 의사 소통을 한다. 꿀벌들은 춤을 통해서 꽃이 어디 있는지 알린다. 영장류쯤 되면 꽤 복잡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보초를 서는 당번은 주위를 살피면서 천적이 나타나면 재빨리 집단 전체에 알린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은 지금, 그리고 이곳에서 눈에 보이는 일에 관해서이다. 지금과 이곳이라는 시간과 공간의 특수성을 지닌 콘텐츠를 가지고 소통하는 것은 모든 생물체에서 볼 수 있다.
지금이 아닌 때, 이곳이 아닌 곳, 다시 말해서 칸지가 텅 빈 컵에서 주스를 상상했듯 당장 눈앞에 없는 가상의 세계를 상상하는 능력은 오랫동안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으로 여겨져 왔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이미 일어난 일, 앞으로 일어날 일, 심지어는 일어나지 않은 가정 속의 일까지 이야기한다.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있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뒷담화도 마찬가지다. 언어는 바로 추상적 사고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무한한 세계에서 살게 되었고, 인류 문명은 이 보이지 않는 상상의 세계에서 시작되었다.
언어의 발달은 진화 과정에서 생명을 내놓을 만큼 중요했지만, 새로운 문제도 낳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는 능력은 곧 ‘거짓말’을 가능하게 했다. 나 혼자만 거짓말을 한다면 큰 이익을 볼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거짓말을 하면 사회가 무너진다. 인류 사회는 거짓말을 알아내고 제재하기 위해, 그리고 거짓말을 예방하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양치기 소년의 우화를 통해 거짓말은 처음에는 소년에게 재미를 주지만 결국 소년을 죽였다고 어린아이들에게 가르친다. 많은 종교에서 이웃에게 거짓말로 해를 끼치는 일은 죽음으로 벌할 수 있을 만큼 중죄로 다룬다. 상상력이라는 축복의 대가로 거짓말이라는 골칫덩어리도 떠안게 된 것을 보면 확실히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그동안 인간이 아닌 동물들에게서도 가상의 세계를 인지한다는 주장은 있었으나 실험 결과는 드물었다. 이 논문은 실험을 통해 상상력은 인간에게 독특한 능력이 아니라는 놀라운 결론을 내린다. 상상력은 인류 계통이 독창적으로 발명한 것이 아니라, 인류와 유인원이 분기하기 이전 공통 조상에게서 다 같이 물려받은 특징이라는 결론도 도출된다. 어쩌면 보노보뿐만 아니라 더 많은 동물이 가상의 세계를 인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상상력은 ‘인간만의 고유한 특권’이라기 보다는 ‘동물적 본성’에 가까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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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UC 리버사이드 교수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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