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가장 재미있게 봤던 예능 프로그램 중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이휘재가 진행했던 ‘인생극장’이 있다. ‘인생극장’에서 이휘재는 매 회 어떤 결정적인 상황을 맞이하고, “그래 결심했어!” 라는 멘트와 함께 두 가지 옵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이후 그가 인생 A를 선택했을 때와 인생 B를 선택했을 때 결과가 판이하게 그려진다.
예를 들면 이렇다. 그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맞은 편의 신사가 서류 봉투를 놓고 내리는 걸 목격한다. 인생 A: 서류 봉투를 집어 들고 곧바로 따라 내린다. 인생 B: 서류 봉투를 집어들기는 하지만 다음날 서류 봉투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한다. 과연 그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하며, 인생 A를 택해야하네 인생 B를 택해야하네 하며 즐겁게 ‘인생극장’을 보았다.
실제로 우리는 수많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돌이킬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찰나의 선택을 하며 살고 있다. 어떤 선택은 무의식 중에 쉽게 이루어지지만, 어떤 선택은 장고를 거듭해도 확신이 없어 망설여질 때가 있다. 특히 나이가 들고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망설임이 커지곤 한다.
나의 경우 대학교, 첫 직장, 그리고 첫 이직을 결정할 때는 큰 고민이 없었다. 그 결과가 좋았던 나빴던 선택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인생의 단맛과 쓴맛, 성공과 실패를 조금씩 맛보며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다보니, 점점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일례로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두 개의 좋은 일자리 제안을 받아 둘 중 하나만 고르면 되는 데도 거의 한달 동안 결정을 못했었다.
스스로 반성을 하다가 최근 ‘결정 장애’라는 용어를 접하게 되었다. 결정 장애는 선택을 해야할 때 단번에 결정하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심리로,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라며 고민한 햄릿의 이름을 빌려 햄릿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요즘 들어 농담 반 진담 반 결정 장애가 있는 것 같다고 얘기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예를 들어 10분 넘게 짜장면과 짬뽕 중에 뭘 먹을지 고민했다는 친구도 있고, 마음에 드는 스웨터 둘을 놓고 결국 못 골라 빈 손으로 가게를 나왔다는 친구도 있다.
요즘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목표가 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다들 성공과 행복을 바라면서도, 무엇이 성공이고 행복인가에 대해서는 선뜻 답을 내놓지 못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에는 갈수록 잃을 것들이 많아지고, 선택에 앞서 주저주저 하다가 결국 또 다른 후회를 남기기도 한다.
결정 장애 환자가 되지 않으려면 결국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최선인 듯싶다.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겠으면 짬짜면을 시키고, 스웨터를 두 개 다 산 다음에 한 개를 반환하면 될 일이다. 하루 이틀 지나면 어떤 옷이 더 잘 어울리는지 스스로 결론이 나지만, 혹시 결론이 안 나면 둘 다 입는 것으로 하고 한동안 쇼핑을 자제하면 된다.
비슷한 랭킹과 취업률의 서부 학교와 동부 학교 중 선택을 못하겠으면, 추위를 많이 타는지 더위를 많이 타는지 여부로 결정해보자. 직장은 평생 다니기는 어차피 힘드니 안 맞으면 이직하자.
‘인생극장’의 이휘재처럼 인생A와 인생B의 결과를 당장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올해는 모두 조금 더 심플하게 생각하고 행동해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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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정 아마존 선임 프로덕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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