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집안은 민주당의 케네디와 맞먹는 공화당의 명문이다. 케네디가 3대에 걸쳐 한 명의 대통령과 법무장관, 연방 상원의원, 대통령 후보, 연방 하원의원을 배출했다면 부시도 3대에 걸쳐 연방 상원의원과 2명의 대통령, 그리고 한 명의 대통령 후보를 내놨다.
이 두 집안은 정치적으로는 견해가 다르지만 공통점도 많다. 아버지의 덕이기는 하지만 모두 자녀들이 명문대를 나왔고 엄격한 규율을 자랑하며 집안 식구들 간 로열티가 강하고 집안일을 좀처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아버지 부시가 아들 부시의 집권 8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져 왔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니다. 아버지 부시가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아들 부시를 잘못 보좌한 딕 체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퓰리처 상 수상작가인 존 미첨이 쓴 ‘운명과 권력’이란 책에서 아버지 부시는 체이니를 “쇳덩어리 엉덩이”(iron ass)로, 럼스펠드는 “건방진 인간”(arrogant fellow)이라 부르고 이들의 판단 착오로 미국이 이라크의 수렁에 빠져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궁극적인 책임은 아들 부시가 져야 한다며 “최종 책임은 거기 있다”(The buck stops there)라고 말했다. 아들 부시의 대표 연설인 2002년의 “악의 축” 발언에 대해서도 “역사적으로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것”이라고 깎아 내렸다.
90이 넘은 아버지 부시가 왜 시점에서 이런 발언을 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럼스펠드와는 수십년에 걸친 경쟁 관계로 악감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체이니는 아버지 부시 때 국방장관을 하며 걸프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런 체이니에 대해서도 아버지 부시는 “내가 알던 체이니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 책에는 한 때 동성애자 결혼에 반대했던 아버지 부시가 세월이 지나면서 이에 대해 좀 더 관대한 태도를 취하는 등 달라진 모습도 실려 있다.
좀처럼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 아들 부시와 럼스펠드, 체이니는 아버지 부시의 이런 평가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아들 부시는 성명을 통해 “체이니는 부통령으로 훌륭히 직무를 수행했으며 대통령 임기 중 그가 내 곁에 있었던 것은 행운으로 생각한다. 럼스펠드도 유능하게 국방부를 이끌었으며 두 사람의 좋은 조언과 사심 없는 나라에 대한 서비스, 우정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럼스펠드는 자신에 대한 비판에 대해 “아버지 부시가 나이가 들어 아들을 잘못 판단하고 있다. 내가 아는 아들 부시는 자기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다”라고 논평했다.
이 책 발간에 가장 당황해 하고 있는 사람은 내년 대선에 출마중인 또 다른 아들 부시인 젭이다. 가뜩이나 지지도가 낮은 한자리에서 오르지 않아 고민 중인 그에게 둘 다 대통령이었던 아버지 부시와 형 부시의 충돌은 반갑지 않은 뉴스다. 이라크 침공 결과에 실망하고 세 번째 부시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또 한 번 부시를 찍어주고 싶은 마음을 사라지게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때 공화당 선두주자로 꼽히던 젭 부시는 현재 지지율 폭락으로 후원자들이 등을 돌리는 바람에 직원 수를 줄이는 등 경비 절감에 힘서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지금 공화당 대선 구도는 외과의사 출신인 벤 카슨이 허풍쟁이 도널드 트럼프를 제치고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자신의 경력 부풀리기 등 논란에 휩싸인데다 주요 이슈에 대한 뚜렷한 정책이 뭔지도 불분명해 힐러리와 붙을 경우 승산이 희박하다는 것이 중론이고 막상 대통령이 된 후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카슨도 아니고 트럼프도 아니고 젭도 아니라면 공화당 후보는 누가 되는 것일까. 그나마 여론 조사에서 높은 한 자리 수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마르코 루비오 뿐인데 그가 과연 힐러리 상대가 될 수 있을까. 아이오와 코커스가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지금 공화당의 앞길이 답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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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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