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팬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은 한 때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은행가”라는 평가를 받던 인물이다. 미국 동전에 쓰여 있는 “우리는 신을 믿는다”(In God We Trust) 대신 “우리는 그린스팬을 믿는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처럼 그가 높은 점수를 받은 이유는 2000년 터진 하이텍 버블로 인한 위기를 별 탈 없이 마무리 지었기 때문이다. 1987년 레이건에 의해 FRB 의장에 임명된 그는 2006년까지 네 차례 연임하며 장장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미국의 경제 정책을 좌지우지 했으며 그 기간 미국은 단기 불황은 있었지만 대체로 호경기를 누렸다.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그가 의장직을 그만 둔 직후인 2007년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서 발생한 금융 위기 때부터다. 그는 2000년 하이텍 버블이 터지면서 미국이 불황에 빠져들 조짐을 보이자 연방 기금 금리를 1%대로 내리는 강수로 대응했다.
그 결과 1929년 주가 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 같은 사태는 막을 수 있었지만 싼 금리에 바탕을 둔 부동산 버블이 부풀기 시작했다. 그는 2004년부터 금리를 올리면서 연착륙을 유도하려 했지만 부동산 거품은 2006년까지 부풀다 2007년 결국 터지고 만다. 전문가들은 그가 좀 더 일찍 금리를 올렸더라면 부동산 버블이 그토록 부풀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2007년 시작된 미국 발 세계 금융 위기도 없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모두 결과론이고 막상 현장에서 금리를 올릴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경기 회복 정도가 금리 인상을 견뎌낼 수 있을지 없을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완연한 회복세로 접어든 것도 아닌데 금리를 올렸다 불경기가 찾아온다면 너무 성급했다는 비난을 듣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경기가 확실히 회복됐을 때까지 기다리면 그 때는 별 효과도 없고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돌이켜 보면 2000년 하이텍 버블이 터진 것도 90년대 말 FRB가 금리를 올린 것이 직접적 원인이었다. 하이텍 버블 형성 초기 단계인 1996년 이미 “비이성적인 들뜸”(irrational exuberance)을 경고했던 그린스팬은 99년부터 금리를 점진적으로 올림으로써 버블 붕괴와 경착륙을 피해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하이텍 중심의 나스닥이 최고치에서 80%까지 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대공황의 재판을 우려한 FRB는 연방 기금 금리를 6%대에서 1%대로 급속히 내렸고 그 결과 이로 인한 금융 위기는 막을 수 있었으나 이것이 부동산 버블을 불렀고 결국 이것이 터지면서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대불황이 닥친 것이다.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났다”는 속담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지난 주 FRB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연방 기금 금리를 현행 0% 선에서 동결했다. 실업률이 내려가고 소비가 등 미국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는 있으나 중국 증시 버블 붕괴와 유럽의 재정 위기는 등 아직 세계 경제 상황이 금리 인상을 감내할 만큼 튼튼하지 않다는 판단에서 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다우 존스 산업 지수가 2009년 최저치에서 3배 가까이 오르고 주택 가격은 2006년 최고치에 접근하는 등 다시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를 계속 방치했다 또 다시 버블이 터지면 재닛 옐런 FRB 의장도 그린스팬이 받았던 것과 같은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연방 기금 금리는 지난 60년간 경제 상황에 따라 0%에서 20%까지 등락을 거듭해왔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이것이 0%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번 금융 위기의 여파가 얼마나 컸던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사태가 계속될 수는 없다. 초저금리 시대는 이제 거의 종말에 다다랐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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