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메도우즈 도착해‘종주’
“감사할 게 많았던 여정으로 기억될 것”
달콤한 하룻밤을 보내고 또다시 출발이다. 산불로 인한 매캐한 연기가 계곡과 하늘을 뒤덮고 있다. 수백 년 동안 자연을 지키고 인간의 생존을 도우며 함께 해온 산림들이 재로 변하고 있음을 생각하니 타 들어가는 나무만큼이나 마음이 쓰리고 아파온다.
오늘부터는 큰 고개도, 크게 힘든 곳도 없이 그저 잘 닦여진 트레일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오고 가며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혼자 걷는 사람, 커플이 걷는 사람 그리고 그룹으로 걷는 사람들의 비율을 따져 본다. 매번 다르겠지만 이번 경우로 본다면 ‘나홀로 족’이 35%, ‘커플족’이 40%, 그리고 ‘그룹팀’이 25%정도 되는 것 같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눈길이 가는 사람들은 동반자가 없는 ‘나홀로 족’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얼마나 외롭고 심심하고 쓸쓸할지를 생각해본다. 잃은 배우자를 생각하며 이 트레일을 걷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에겐 이 같은 생각이 결코 쓸데없는 비약이나 상상은 아니다. 나는 2013년 늦봄, 폭설이 시애틀을 강타한 어느 날 산행을 하다 아내와 함께 눈사태를 맞아 눈에 파묻혀 99% 죽음의 문턱에서 정말 거짓말 같은 행운으로 10여분 만에 빠져 나왔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아내는 20여분이 넘어서야 내 등산용 스틱에 가까스로 감지돼 이승으로 되돌아온 잊을 수 없는 생애 최악의 순간과 최고의 기쁨이 동시에 교차한 쓰라린 경험이 있다.
내 옆의 누군가와 함께하며 대화하고 토닥거리는 일상이 어느 사람에게는 하찮고 평범한 일이겠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예사롭게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다. 행복이란 녀석은 늘 뒤에 숨어있다 힘들고 외로울 때만 나타난다. 이런 행복과 가까워지고 친해지려면 우리 삶의 뒤에 숨어 있는 행복을 항상 찾아내는 고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자연과의 교감은 긴장감 속에서도 이루어진다. JMT는 야생 곰의 천국이다. 개체 수를 조절하기 위해 해마다 수백 마리의 곰 사냥을 허가할 만큼 많은 곰이 살고 있다. 야영장에도 가끔 곰이 나타난다. 따라서 트레커들은 음식 냄새를 맡고 찾아올 수 있는 야생 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모든 음식물들과 비누ㆍ치약 등 향료가 섞인 물품들은 반드시 밀폐용기로 된 곰통(Bear Box)안에 보관해 두고 텐트는 최소 30피트 이상 떨어진 곳에 설치해야 한다.
JMT에서 경계해야 할 또 다른 존재가 바로 모기다. 6월부터 7월 중순까지는 야생화가 피어 아름답지만 모기와의 전쟁을 피할 수 없다. 반면 8월부터는 꽃은 대부분 사라지고 모기도 거의 없다.
속절없이 흐르는 물처럼 어느덧 3일이 다 가고 오늘은 JMT 북쪽을 연결하는 끝 지점인 레드 메도우즈(Red Meadows)에 들어가게 된다.
캘리포니아주 유명 스키장이 있는 맘모스 레이크(Mammoth Lakes)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레드 메도우즈는 겨울뿐 아니라 여름에는 JMT와 PCT를 오가는 수많은 트레커들의 터미널 역할을 하는 곳으로 늘 북적댄다. 2012년 JMT 북쪽구역 트레킹을 이곳에서 시작해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해피 아일(Happy Isles)에서 끝 낸 적이 있어 낯설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니 전에 없이 한기를 넘어 추위가 느껴지며 손발이 시렸다. 부지런히 보따리를 챙겨 출발한다. 3.5마일만 가면 우리만의 JMT종점에 다다른다.
추위가 재촉해 서둘렀던 트레킹은 1시간여만에 레드 메도우즈에 도착하며 남북을 연결하는 9박10일간의 JMT 트레킹은 끝을 맞았다. JMT 215마일 전구간은 이번을 끝으로 겨우 한번 완료됐지만 내 맘속 트레킹은 계속 진행형일 것이다.
이번 JMT 여정에는 감사할 일이 특별히 많았다. 비숍에서 차를 태워준 부부, 먹거리와 용돈까지 챙겨준 ‘미주 아름다운 부부 산악회’회원들, 그리고 9박10일 동안 내 옆에서 살아 숨쉬는 숨소리를 들려주고 함께 했던 아내에게도 사랑과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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