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에서 남서쪽으로 340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섬이다. 제2차 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들던 1945년 4월 미국은 이곳을 일본 본토 공격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침공 작전을 펼쳤다. 두 달 간 계속된 이 전투에서 일본군 7만7,000여명이 사망하고 최대 15만명의 주민이 죽었다. 미군 사망자도 1만4,000이 넘었다.
면적은 일본 전체의 0.5%, 인구 1% 수준인 오키나와 하나를 점령하는데도 이런 정도의 희생이 뒤따랐다면 일본 본토 점령에는 100만 이상 미군 피해가 불가피할 것이란 게 미군 사령부의 계산이었다. 그 해 8월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이 떨어진 것은 이런 희생을 감수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원자탄을 맞은 일본의 반응은 신속했다. 나가사키가 폐허가 된 것을 본 소련이 불가침 조약을 깨고 9일 만주국을 공격한데다 지금 항복하지 않으면 다음에는 천황이 사는 도쿄가 원자탄 세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공포가 일본 지도부를 강타했다.
급해진 것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 의사를 전달받은 미국이었다. 일본이 항복할 경우 일본이 통치하고 있던 한반도를 누군가 접수해야 하는데 가장 가깝다고 해야 600마일 떨어진 오키나와에 진주해 있는 미군은 그럴 능력이 없었다.
훗날 국무장관이자 당시 마샬 장군 보좌관으로 있던 딘 러스크 대령과 역시 육군 대령 보좌관이던 찰스 본스틸은 밤새 머리를 맞대고 소련의 한반도 접수를 막을 방도를 연구했다. 러스크는 훗날 회고록에서 “나와 본스틸은 일본이 항복을 통고해 온 14일 밤늦게 회의실에서 미군이 점령할 지역을 정해야 했다. 우리는 수도 서울이 미군 점령지에 포함돼야 하지만 육군이 광범위한 지역을 점령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울 바로 북쪽을 찾아보았지만 적당한 자연 경계물이 없었다. 그 때 눈에 띈 것이 38선이다. 우리는 이를 상부에 권고했고 육군 사령부는 별 얘기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놀라운 것은 소련도 그랬다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이 때 스탈린이 재빨리 군대를 한반도에 보냈더라면 대한민국은 애당초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첫 번째 기적이다.
절대 다수의 한국민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한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일본의 관제 방송은 패망 직전까지 일본이 이기고 있다는 뉴스만 내보냈기 때문이었다. 더더구나 워싱턴의 한 골방에서 한반도를 둘로 쪼개는 결정이 내려지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해방과 한반도의 분할에 관해 정작 이곳에 살고 있던 한민족은 아무런 발언권도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했다. 독립이 한민족의 손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38선은 미소 간 냉전이 격화되면서 더욱 굳어졌고 1950년 6.25사변 이후 중무장된 군사 분계선으로 바뀌었다. 북한의 6.25 남침 때도 소련이 유엔에서 거부권을 행사했더라면 유엔군은 파견되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게 됐더라면 대한민국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두 번째 기적이다.
국민의 뜻과 관계없이 반 토막 나고 그것도 모자라 6.25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이 해방 70년이 된 지금 2차 대전 이후 거의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모범 국가로 우뚝 섰다. 이 기간 국내 총생산(GDP)은 3만 배가 넘게 증가했고 국민 총소득은 400배가 늘었다. 총 수출액 세계 6위, 무역 규모는 8위로 올라섰다. 세 번째 기적이다.
지금 한국은 청년 실업과 부의 양극화, 고령화, 경제 성장 둔화 등 숱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해방 직후의 혼란상과 6.25, 보릿고개로 배를 곯던 시절에 비하겠는가. 오는 15일이면 해방을 맞은 지 꼭 70년이 된다. 지난 70년의 역사는 누가 뭐래도 온갖 난관을 피땀으로 극복한 전진의 역사였다. 산적한 현안에 한 숨 쉬기보다는 이보다 큰 어려움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온 선배들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더욱 부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할 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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