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12월 5일 공주를 내려다보는 우금치에서 2만 명의 동학 농민군과 일본군 2,000, 그리고 그 지휘를 받는 관군 3,000이 맞붙었다. 결과는 농민군의 참패였다. 5일간 계속된 전투에서 농민군은 사실상 궤멸됐고 농민과 그 가족에 대한 학살이 잇따랐다. 이 때 죽은 농민과 가족 수는 4~5만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농민 지도자 전봉준도 부하의 밀고로 잡혀 교수형에 처해졌다.
조선인과 일본군과의 사실상 최대 격전이었던 이 전투에서 농민군이 짐으로써 사실상 조선은 명을 다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 후로는 제대로 된 싸움도 못해 보고 일본의 손에 넘어갔다. 도대체 왜 농민군은 압도적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패배했을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일본군은 게이틀링 기관총으로 무장한 반면 농민군은 대부분 죽창을 들었다는데 있다. 농민군은 주문을 외고 부적을 붙이면 총알도 피해간다는 지도부의 말만 믿고 기관총 앞으로 돌격에 돌격을 거듭했다. 결과는 비극이었다.
이렇게 된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자면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조선의 개국을 요구하며 무력 공격을 감행한 프랑스와 미국 함대와 맞서 싸웠던 대원군은 이들이 전투에서 이기고도 자국 사정으로 돌아가자 이를 조선의 승리로 착각하고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고는 문을 굳게 닫았다.
같은 시기 1854년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문을 연 일본은 프랑스의 군사 고문을 초청해 현대식 군사 기술을 배웠다. 1873년에는 전국적으로 징병제가 실시되고 군사학교와 무기고가 세워졌다. 1885년에는 독일의 육군 군사 고문을 데려와 병참과 포병 등 여러 분야에서 유럽 최강의 군대란 어떤 것인가를 습득했다.
해군은 해군대로 바다의 강자 영국을 따라 배웠다. 영국 군사고문단이 일본에 파견돼 최신 군사 기술을 가르쳤고 학생들을 영국에 파견, 선박 조종술과 함포술을 익히게 했다. 1894년 청일전쟁 발발 당시 일본은 12척의 최신 전함과 현대식 무기로 무장된 12만 병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조선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도 일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1860년대부터 1890년대까지 30년 세월 동안 어떻게 대응했느냐가 조선과 일본의 운명을 가른 것이다.
일본의 동아시아에서의 주도적인 위치는 1905년 북유럽 발트 해에서 동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수만 마일에 걸친 항해를 하느라 지친 러시아의 발트 함대를 일본이 쓰시마 해협에서 수장시킴으로써 더욱 공고해졌다. 청일전쟁에 이어 러일전쟁의 승자가 된 일본은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한반도에서의 지배자적 지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같은 해 체결된 을사보호조약과 5년 후 있은 한일합방은 이런 국제 정치적 현실을 문서로 표현한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보면 1860년대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조선 멸망의 직접적 원인인 셈이다. 그 때 조선이 일본의 예를 본받아 서구에 유학생을 보내고 고문단을 초청해 서구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더라면 그 후 100년 간 계속된 비극의 역사는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요즘 한국에서는 일제시대 친일파 암살을 다룬 영화 ‘암살’이 인기다. 개봉 11일 만에 이미 관객 600만을 돌파했고 1,000만을 넘어서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명량’처럼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스토리에 화려한 액션, 그리고 흥행 보증 수표가 된 전지현, 하정우, 이정재 등이 총출연해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는 점을 감안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이 영화는 친일파를 끝까지 추격해 단죄함으로써 보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고 있지만 친일파를 죽이는 것이 과연 독립에 기여했는지는 답하지 못하고 있다.
나라는 한 번 망하면 되찾기는 지극히 어렵다. 올해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끝난 지 120년과 110년, 을사늑약 체결 110년, 해방 70년이 되는 해다. 이 영화를 보며 조선은 왜 망했으며 앞으로 한국이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같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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