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와 유럽 연합 연합은 지난 주말 극적으로 금융 구제안에 합의했다. 이로써 그리스의 유로화 탈퇴와 경제적 파탄은 일단 면할 수 있게 됐으나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번 합의안은 원래 채권단이 그리스에 제시한 것보다 훨씬 가혹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안에 합의할 생각이면 지난 주 국민 투표는 왜 해 원안을 부결시켰는지 모를 일이다. 이번 안이 전보다 엄격해 진 것은 치프라스의 무책임한 언행에 분노한 독일과 핀란드 등 일부 국가가 더 이상의 그리스 구제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리스 때문에 유로존이 무너지게 할 수는 없다는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의 설득에 마지못해 합의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과를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의 백기 투항으로 보고 있다. 지난 5년간 구제 금융을 통해 두 번이나 위기에 빠진 그리스를 도와준 유럽 연합을 비난하고 뼈아픈 개혁 없이도 그리스를 잘 살게 하겠다며 총리가 됐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가 채권단의 요구에 굴복한 것이란 분석이다.
만약 그가 채권단의 요구를 거부했더라면 수일 안에 돈이 마른 그리스 은행들의 줄도산과 함께 그리스 경제의 마비가 불가피했을 텐데 이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이번 합의는 그리스가 세 번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제 조건을 수락한 것이지 구제 금융을 즉시 해주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는 15일까지 연금과 세제 개혁을 포함한 강도 높은 구조 조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켜야 하며 독일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도 자국 의회에서 이 안 승인을 받아야 한다.
급진 좌파가 장악하고 있는 그리스 의회가 이를 통과시켜 줄지도 불확실하지만 통과시키더라도 과연 개혁이 실지로 시행될 지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과거에도 개혁을 조건으로 구제 금융을 받았지만 돈을 받은 후에는 ‘무늬만 개혁’을 해 지금의 위기를 불러오고 말았다.
이번 개혁안이 그리스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분석도 있다. 세금을 더 거두고 연금 수령 나이를 올리는 등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그리스 경제의 고질적인 병폐인 노동 시장과 비즈니스 규제 철폐에 대해 별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그리스 노동자들의 휴가는 1년에 한 달에 달하며 해고할 때는 6개월 전에 통지를 해야 하고 2년치 월급을 줘야 한다. 그리스 젊은이들의 실업률이 왜 50%에 달하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비즈니스 업주들에 대한 제약은 이뿐이 아니다. 책방은 할인 판매를 할 수 없고 다른 업종도 이에 관해 까다로운 제한을 받는다. 일요일에 문을 여는 것은 대체로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을 대거 고용해 사업을 확장하려는 사업주가 있을 리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나라가 그리스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소위 ‘돼지들’(PIGS)로 불리는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재정 위기에 처한 나라들은 모두 비슷한 상황이다. 연금과 실업 수당 등 복지 혜택은 후한데 이를 뒷받침할 경쟁력 있는 산업과 기업은 별로 없다. 그런데도 이들 나라 정부는 경직된 노동 시장과 규제를 통해 비즈니스가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막고 있다.
이번 그리스 사태가 분명히 보여준 것은 현격한 경제적 격차가 있는 남부와 북부 유럽을 유로라는 단일 통화로 한데 묶으려 한 것이 비현실적 발상이었다는 점이다. 유로화가 ‘하나의 유럽’을 가져올 것이란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남과 북,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채권국과 채무국 사이 골만 깊게 만들었다.
유럽의 이런 경제적 분열상은 북아프리카를 탈출하려는 회교도들의 집단 이주 문제와 호시탐탐 유럽에서의 주도권 행사를 노리는 팽창주의 러시아에 대한 공동 대응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런 현실은 이번 그리스 사태가 한 고비를 넘긴다 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컬럼버스 이후 온 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하며 역사를 주도하던 유럽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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