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주는 나라로 치면 일당 독재 국가다. 주지사부터 부지사, 연방 상원의원, 검찰총장 등이 모두 민주당이고 주 의회도 상하원 모두 민주당이 다수다. 주기적으로 선거를 하기는 하지만 앞으로 매우 오랫동안 이런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공화당은 선거에서 이기겠다는 생각은 포기한지 오래고 유일한 관심사는 민주당이 의석의 2/3를 차지해 주지사의 거부권에 신경 쓸 필요 없이 국정을 농단하는 것을 막느냐마느냐에 있다. 그도 별 의미가 없는 것이 어차피 주지사는 민주당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부 의견 조율이 어떻게 이뤄지느냐가 공화당이 뭐라고 떠드느냐보다 훨씬 중요하다.
가주 공화당이 늘 이처럼 허약했던 것은 아니다. 가주는 제2차 대전 이후 미국 정치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대통령인 닉슨과 레이건의 고향이다. 80년대에서 90년대 중반까지도 공화당의 듀크메이지언과 윌슨이 두 번이나 주지사를 해먹는 등 민주당과 대등한 싸움을 벌였다. 그러던 것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그 가장 큰 책임은 윌슨이 져야한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같이 한다. 1994년 주지사 선거가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돌아가자 윌슨은 불법체류자의 의료 등 복지 혜택과 이들 자녀의 교육권을 박탈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주민 발의안 187을 들고 나왔다. 이는 백인 보수층의 표심을 자극해 윌슨이 재선에 성공하는데 일조했다.
그러나 이는 그전까지 공화당에 우호적이던 라티노를 완전히 민주당으로 몰아넣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국 정치에서 불변의 법칙은 두 가지다. 하나는 유권자의 표를 많이 받는 당이 선거에서 이긴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라티노 인구는 매년 늘어난다는 것이다.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유권자 집단을 적으로 돌리고 선거에서 이기기를 바란다는 것은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가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뻔히 보면서도 공화당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2012년 대선에서 롬니가 오바마에게 진 이유 둘을 들라면 미국민의 47%를 “받아먹는 자”(takers)로 비하한 것과 불법체류자는 “스스로 추방(self deportation)되어야 한다”는 발언일 것이다. 가뜩이나 벌어지는 빈부 격차로 분노하고 있는 국민 절반을 모욕하고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유권자 그룹이며 불법체류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라티노의 심기를 거슬리고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2016년 대선에서 공화당이 이기기 위해서는 불법체류자에 대한 사고방식을 뜯어고치는 것이 급선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젭 부시의 불법체류자 문제는 합법화 이외에는 대안이 없으며 공화당 지도부는 여론에 따라 “바람 부는 대로 휘날려서는 안 된다”는 발언은 신선하다.
미국 국경을 넘어 오는 라티노 밀입국자는 미 경기 침체와 단속 강화, 멕시코 출산율 감소와 일자리 증가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현재 역대 최저 수준이다. 그리고 이미 미국에 살고 있는 불체자들은 농장 등 미국인들이 꺼리는 단순 노동에 종사하며 미국 경제가 돌아가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을 더 단속하고 추방하겠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어리석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자기 발에 총을 쏘는 것과 같은 행위다. 그런데도 공화당 일각에서는 이 문제를 가지고 스스로 표를 깎아먹는데 열을 올리고 있으니 딱한 일이다.
연방 항소법원은 최근 불체자의 추방을 일방적으로 유예한 오바마의 행정 명령을 정지시킨 하급법원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 대통령은 오바마 스스로가 말했듯 황제가 아니며 의회가 부여한 권한만 가진다. 불체자 문제는 대통령의 행정 명령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며 의회가 법을 만들어 풀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공화당이다. 공화당 대선 후보와 지도부는 불체자를 어떻게 대우하는 것이 미국과 공화당의 앞날을 위해 현명한 일인지 심사숙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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