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가장 많은 매화꽃을 볼 수 있는 곳은 동경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거리의 이바라키현 미토의 가이라쿠엔이다. 이 공원은 겐로쿠엔, 고라쿠엔과 함께 일본의 3대 공원의 하나로 일본의 전국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평화를 가져온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후손인 미토 영주가 지었다.
170여년 전 영주가 지었지만 백성들에게도 개방했기 때문에 ‘함께 즐기는 공원’이라는 뜻의 가이라쿠엔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곳은 해마다 2월 말이면 100품종 3,000여 그루의 매화나무가 활짝 꽃을 피우는데 그야말로 장관이다. 매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볼만한 풍경이다. 2011년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었지만 수리를 마치고 2012년 다시 문을 열었다.
그러나 한국에도 이를 능가하는 매화 명소가 있다. 바로 섬진강변의 매화 길이다. 일본 가이라쿠엔의 매화가 인공미의 극치를 보여준다면 섬진강 매화는 자연미의 절정이다. 전북 진안에서 발원해 남해 광양까지 212km에 달하는 섬진강은 한반도를 동서로 가른다. 이 강 서쪽은 전라도, 동쪽은 경상도다.
섬진강의 원래 이름은 두치강이었다고 한다. 고려 말 왜구들이 이곳으로 쳐들어오자 강에 살고 있던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들이 일제히 울었고 이에 놀란 왜구들이 도망가자 마을 사람들이 두꺼비의 공을 기리기 위해 ‘두꺼비 섬’자를 붙여 강 이름을 다시 지었다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이곳 풍경에 어울리는 재미있는 전설이다.
섬진강은 강폭이 좁고 수심이 얕은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해상 통로로는 적당하지 않아 주변에 큰 도시들이 발달하지 못하였다. 한 때는 지역 발전에 장애가 됐던 이 요소가 이제는 장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교통량이 많지 않고 대도시가 없는 탓에 섬진강은 한국의 5대강 중 가장 깨끗한 강이 됐다. 맑은 물에서만 산다는 은어와 제첩, 참게가 이 고장 특산물인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보다 이곳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른 봄 구례에서 하동까지 섬진강변을 따라 피는 매화다. 맑고 푸른 강을 따라 수천그루의 매화나무에서 피어나는 은은한 흰 빛을 띤 매화의 자태는 우아하면서도 기품이 있다.
김정희에서 정약용에 이르기까지 조선조 선비들은 ‘매난국죽’이라 하여 매화와 난초, 국화와 대나무를 사랑했지만 그중 매화를 으뜸으로 쳤다. 3월초 매서운 겨울바람을 뚫고 가장 먼저 피고, 피었나 하는 사이 어느덧 자취도 없이 깨끗이 지는 매화의 모습이 절개 있는 선비들의 마음에 몹시 와 닿았나 보다.
그 가운데서도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황의 매화 사랑은 각별해서 92제 107수의 매화시를 썼고 그 중 62제 71수를 모아 ‘매화시첩’이란 책도 냈다. 얼마나 매화를 좋아했으면 퇴계의 마지막 말이 “매화나무에 물을 주라”였을까.
3월 말이면 섬진강의 매화는 사라지지만 너무 서운해 할 것은 없다. 매화에 버금가게 아름다운 벚꽃이 피기 때문이다. 이때는 역시 맑은 물에서만 자라며 벚꽃 필 때 먹어야 제일 맛있다는 벚굴이 나오는 시기이기도 하다.
전라도 경상도 사람 구별 없이 함께 즐기는 동서화합의 상징 화개장터에서 벚굴과 제첩국, 참게탕을 먹으면서 벚꽃 감상을 하는 것보다 즐거운 봄맞이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 화개장터는 작년 가을 화재로 불타버렸지만 노래 ‘화개장터’로 히트를 친 조영남 등의 모금활동에 힘입어 복구를 마치고 올 봄 다시 문을 열었다.
올해는 매화도 벚꽃도 모두 졌지만 봄은 다시 돌아온다. 한국에서 섬진강의 꽃 풍경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은 내장산과 오대산의 단풍밖에는 없다. 섬진강 꽃길을 조용히 거닐다 보면 어째서 퇴계가 죽기 전 매화나무에 물을 주라 했는지 약간은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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