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드라마 ‘정도전’이 드디어 끝났다. 조선을 사실상 세운 정도전의 일대기를 그린 이 작품은 고려 말 조선 초의 정치 상황을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면서도 재미있고 극적으로 그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근래에 보기 드문 수작이다.
이 작품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이성계, 정몽주, 정도전, 이방원 역을 맡은 사람들의 뛰어난 연기이다. 그 중에서도 간신으로 나온 이인임의 연기는 압권이다. “구걸에 맛을 들린 자는 절대 대들지 못 한다” “공짜도 자꾸 주면 권리가 된다” “힘없는 자의 용기만큼 공허한 것도 없다” 등등 말을 남겨 ‘이인임 어록’이 인터넷에 나돌 정도다.
그러나 이보다 이 작품을 인상 깊게 하는 것은 권력의 본질과 역사의 아이러니를 깊이 있게 파헤쳤기 때문이다. 이인임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권력을 농단한 고려의 간신이다. 그러나 그는 고려를 망하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럼 누가 고려를 망하게 했나. 정답은 정몽주와 함께 ‘만고의 충신’으로 불리는 최영이다. 그가 무리하게 요동 정벌을 추진하지만 않았어도, 몰래 왕이 되기를 꿈꾸고 있었던 이성계에게 군권을 맡기지만 않았어도, 고려는 오래 살아남았을 것이다. 뒤늦게 이성계의 역심을 알아보기 전까지 그를 도왔던 정몽주도 책임의 일단을 면할 수는 없다.
또 역설적인 것은 이들이 공동의 적으로 여기던 이인임이 아니라 오랜 동지이던 이성계 일파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점이다. 적이 아니라 동지에 의해 죽기는 주인공 ‘정도전’도 마찬가지이다. 정도전이 ‘대업’을 꿈꾸던 시절 자신이 훗날 이인임이 아니라 대업을 이룬 후 그 동지였던 이방원에 의해 살해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혁명이 성공한 후 혁명가를 죽이는 것은 반동이 아니라 혁명 동지다. 프랑스 혁명 지도자 로베스피에르는 혁명 동지 당통을 죽이고 자신도 혁명 동지에 의해 처형됐고 러시아 혁명 후 스탈린은 부하린과 트로츠키를 비롯한 수많은 혁명 동지를 살해했다. 모택동은 중국 천하를 먹은 뒤 팽덕회와 유소기 등 혁명 동지를 청소했고 가까이 북한의 김일성도 집권 후 박헌영의 남로당파, 김두봉의 연안파, 허가이의 소련파, 박금철의 갑산파 등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세력은 모조리 싹을 잘랐다.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것은 결국 무자비한 자가 권력을 잡는다는 것이다. 이성계는 왕이 되기 위해 우왕과 어린 아이에 불과한 창왕, 그리고 자신이 세운 공양왕까지 죽였다. 그 아들 이방원은 아버지가 아끼던 신하이던 정도전과 개국공신이던 남은은 물론 자신의 이복동생인 세자까지 죽였다.
그는 왕이 된 후에도 자신의 집권에 결정적 역할을 한 처갓집 식구들을 도륙을 내는가 하면 자신이 세자로 점찍은 세종의 장인까지 죽였다. 왕의 권력에 자그마한 토라도 달 인간들은 모두 제거한 것이다.
이성계는 숱한 피를 흘리고 권력을 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훗날 자식이 자식을 죽이는 장면을 눈뜨고 봐야했다. 태종은 다행히 일찍 죽어 그 꼴을 보지는 못했지만 훗날 그 손자 수양은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후 자식이 일찍 죽고 자신은 병마에 시달리다 죽는 벌을 받는다. 정녕 인과응보는 있는 것일까.
조선에서는 그 후에도 광해군처럼 왕이 친형과 이복동생을 죽이거나 인조와 영조처럼 아비가 자식을 죽이는 비극이 그치지 않았다.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왕조 아래서 이런 비극은 필연적인 것인지 모른다. 이방원의 말마따나 그 당시 권력 투쟁에 진다는 것은 돈 몇 푼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목숨을 잃고 아내와 딸은 노비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이나 미국을 막론하고 정치판이 어지럽지만 이제는 최소 정적과 그 일가족을 마구 죽이지는 않는다. 더딘 것 같지만 인간 사회는 결국은 발전하고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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