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빈 쿨리지는 아마 미국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말이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별명 자체가 ‘조용한 캘’(Silent Cal)이었다. 1920년 워런 하딩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당선돼 백악관에 들어간 그는 수많은 파티에 참석해야 했지만 좀처럼 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 만찬장에서 뉴욕 사교계의 여류 명사인 도로시 파커와 나란히 앉았는데 도로시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내 친구와 당신으로부터 두 마디보다 많은 말을 하게 만들겠다는 내기를 했다”고 말하자 쿨리지는 “당신이 졌다”(You lose)고 답했다고 한다. 나중에 쿨리지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도로시는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어떻게 분간을 했을까”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다.
1923년 하딩이 죽자 대통령이 된 그는 대통령 직을 수행하면서도 몹시 말을 아꼈다. 왜 그렇게 말을 하지 않느냐고 묻자 “대통령의 말은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극히 신중해야 한다”고 답했다 전해진다.
그는 말을 별로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행동도 신중했다. 훗날 대공황으로 미 최악의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게 된 후버가 쿨리지 내각의 상무장관으로 있으면서 수많은 건의를 했지만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훗날 “후버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수많은 조언을 했으며 그 대부분은 나쁜 것이었다”고 술회했다.
토머스 제퍼슨 이래 100년 넘게 계속돼 온 신년 국정 보고서를 서면으로 의회에 제출해온 관행을 깨고 의회에 직접 나가 국정연설을 한 윌슨의 전례를 뒤집어 다시 서면으로 제출하기 시작한 것도 그다. 이 관행은 프랭클린 루즈벨트에 의해 다시 깨져 지금은 매년 연초 대통령이 의회에 나가 연설하는 것이 연례행사로 굳어졌다.
사실 대통령이 매년 연초에 국정 연설을 해야 한다는 법규는 없다. 연방 헌법은 “대통령은 가끔 국가의 현황에 대한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고만 돼 있다. 매년 할 필요도 없고 직접 의회에 가서 해야 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모든 대통령들이 이를 고집하고 있는 것은 국가 현황을 의회에 보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어젠다를 국민들에게 선전하기 위해서다. 국가의 현 상황이 어떠한지는 별 상관없이 거의 모든 대통령이 “현 미국의 상황은 매우 좋다”(The state of the Union is strong)란 말을 상투적으로 늘어놓는다. 미 금융 위기가 터지기 직전까지 아들 부시는 미국의 상황이 좋다고 했다.
지난 100년 간 캘빈 쿨리지와 가장 대조적인 대통령을 들라면 버락 오바마가 꼽히지 않을까. 그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말이 많은 사람이다. 그와 맞설 상대는 아마 빌 클린턴밖에 없을 것이다. 말없이 뛰어난 행정력으로 높은 지지도 속에 임기를 마친 쿨리지와는 달리 오바마는 말은 잘 하지만 행정 능력은 별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최대 야심작인 오바마케어의 운영이 시작부터 엉망인 것이 좋은 예다.
그 오바마가 28일 다시 신년 국정 연설을 한다. 아마도 오바마케어가 처음 문제점을 극복하고 순조롭게 시행되고 있으며 현재 미국의 가장 큰 문제인 부의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등의 얘기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아직 임기가 3년이나 남아 있는데도 워싱턴 정가에서는 이미 포스트 오바마 시대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5년간은 오바마 지지자 입장에서 보더라도 처음 기대에는 크게 못 미쳤다는 게 솔직한 평가일 것이다. 2008년 ‘담대한 희망’과 ‘변화’를 노래하던 오바마 사진은 이미 빛이 많이 바랬다.
20세기 후반 대통령 중 미국인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레이건이 취임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백악관 집무실에 캘빈 쿨리지 사진을 걸어놓은 것이다. 이제는 말 잘하는 대통령보다 일 잘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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