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다섯 달 앞둔 1972년 6월 17일 5명의 일당이 워싱턴 워터게이트 콤플렉스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들의 구좌에 닉슨 재선 위원회 자금이 흘러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백악관 관련설이 제기되자 닉슨은 이를 단호히 부인했고 닉슨 대변인 론 지글러는 “3류급 빈집털이 기도”로 일축했다. 불과 2년 뒤 닉슨이 이 일로 탄핵을 피하기 위해 사임하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 후 40년이 지난 이 일을 연상시키는 사건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2012년 9월 11일 대선을 두 달 앞두고 리비아 벵가지에 있는 미 대사관이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아 대사를 포함 4명의 미국인이 사망했다. 국무부는 처음 이것이 이슬람을 비하한 유튜브에 자극받은 회교도들이 시위를 하다 과격해지면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해명했다. 한 때 오바마에 의해 국무 장관에 지명된 수전 라이스 주유엔 대사도 이를 사실인양 그대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추후 조사 결과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회교도의 시위도 없었을 뿐더러 CIA는 처음부터 이것이 알 카에다와 연관된 테러 조직의 소행임을 알고 있었다. 리비아의 미 대사관 직원들도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전투기 출격 등 병력 증강을 요구했으나 묵살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리비아 주재 부대사였던 그레고리 힉스는 지난주 연방 하원 청문회에서 국무부 발표는 현장 상황과 전혀 다른 얘기라며 “라이스 대사의 발표를 듣고 입이 딱 벌어졌다”고 말했다. 누가 어떤 경로로 이런 왜곡된 발표를 하게 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선거를 앞두고 오바마 행정부의 정치적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건의 핵심을 오도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보다 심각한 것은 지난 10일 터진 연방 국세청(IRS)의 보수 단체 타게팅이다. IRS는 비영리 단체 자격 심사를 하며 단체 이름에 ‘보수’나 ‘애국’ ‘티파티’ 같은 단어가 들어간 경우는 물론 ‘미국을 개선하자’거나 ‘창업자의 뜻을 따르자’ 등의 취지를 내건 단체에 대한 특별 감사를 벌여 까다로운 소명서와 후원자 명단을 제출케 하도록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이 문제가 되자 IRS는 이는 신시내티 사무소의 일부 하급 직원들이 저지른 것이고 이런 사실을 안 것도 최근이라고 해명했다. 2012년 의회 청문회에서 더그 슐먼 당시 국세청장은 그런 일은 절대 없다고 단언했었다. 그러나 최근 공개된 IRS 내부 문건은 2011년 이 사실을 세무 당국이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밝히고 있다.
동서를 막론하고 공무원들의 특기는 복지부동이다. 일부 말단 직원들이 상관의 지시나 비호 없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도 믿기 어렵지만 만약 정말 그렇다면 사실이 밝혀진 순간 이들을 징계하면 될 일을 왜 이제까지 숨겨 왔는지 궁금하다.
이번 일은 가뜩이나 오바마와 국세청의 소행을 괘씸히 여기고 있는 보수 단체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나 다름없다. 스캔들이 일파만파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국세청의 행동이 “부적절했다”고 밝혔고 오바마는 “사실이라면 분노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단어 선택 자체가 잘못됐다. 이번 국세청의 소행은 “부적절”한 것이 아니라 민주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중차대한 범죄다. 민주 시민의 기본권인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국세청도 이미 잘못을 시인했는데 “사실이라면”은 뭔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닉슨이 탄핵 직전까지 간 것은 워터게이트 침입 자체보다 이를 은폐하기 위한 거짓말이 국민의 분노를 샀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모든 것을 정직히 밝히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국세청을 이용해 정적을 괴롭힌 점도 닉슨 탄핵 사유의 하나였다. 닉슨 이래 아무 대통령도 빠져나가지 못한 ‘집권 2기의 저주’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오바마를 감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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