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부들“마이크로웨이브 키패드 가장 불안” 꼽았지만 야채 가는 블렌더의‘개스킷’ 이 최대 매복지 드러나 냉장고 육류-채소 보관 칸·주걱·깡통따개에도‘득실
주방용품과 기구 가운데 세균이 가장 많이 서식하는 곳은 블렌더 개스킷인 것으로 나타났다.
■ 어디에 많이 숨어있을까
주방에는 숱한 복병이 매복하고 있다. 흔히 대장균으로 불리는 이콜라이 박테리아와 식중독균인 살모넬라가 주방의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대표적 복병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빤한 장소에 포진한 세균을 섬멸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제는 주방 공간에 짐작조차 하기 힘든 세균 매복지가 수두룩하다는 사실이다. 그런가하면 세균 집합소일 것처럼 보이는 곳이‘허당’인 경우도 허다하다.
최근 실시된 조사에서 노련한 주부들은 주방에서 세균 오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마이크로웨이브 키패드를 꼽았다. 바쁘게 음식을 조리하다 키패드를 만지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세균감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그들이 제시한 이유였다.
주방 경력 수십년의 고참 주부들이 내놓은 그럴 듯한 추론이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가장 심각한 세균오염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발생한다. 바로 블렌더의 개스킷이다.
블렌더는 채소나 야채, 원두 등을 곱게 갈아주는 주방기구다. 블렌더에는 이음매 부분을 단단히 접합시켜 주는 고무 밴드가 설치되어 있다. 바로 이것이 개스킷이다. 이음매 부분에서 물, 혹은 공기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이번 조사 결과는 주방을 청결하게 만들려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이 식중독의 잠재적 진원지를 간과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비영리 공중보건그룹 NSF 인터내셔널의 세균학자 리사 야카스는 “우리의 연구 목적은 쓸데없이 주부들의 겁먹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음식매개 질병의 확산을 방지하는데 있다”고 강조했다.
야카스는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힘든 주방의 세균 집합소를 제대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 말할 나위 없이 주방은 가정의 ‘위생 1번지’가 되어야 한다. 이곳이 깨끗해야 속이 깔끔하다.
매년 미국에서 발생하는 식중독 건수는 1,000만 건에 가깝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자료에 따르면 음식매개 질환 다섯 건당 한 건은 사람들이 집에서 먹는 음식물에서 비롯된다.
조금 의아하게 들릴지 몰라도 푸성귀와 다른 식물이 전체 식중독 발병건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또한 치명적 식중독 케이스의 3분의 1은 세균에 오염된 가금류가 주범이다.
식중독에 걸렸다 해도, 다시 말해 대장균이나 살모넬라균에 감염됐다 해도 대부분의 건강한 성인은 금방 털고 일어난다.
하지만 노인과 어린이, 임신부 및 면역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합병증을 일으킬 위험이 높다.
야카스를 비롯한 연구원들은 디트로이트와 미시간주 앤아버에 거주하는 조사 대상자 20명의 주방을 둘러보며 그곳에 있는 모든 주방기구들을 면봉으로 닦아 샘플을 채취했다.
이들은 또한 조사 참여 가정의 ‘주방 책임자’에게 가장 세균 오염이 쉽게 일어날 것으로 여겨지는 기구들과 정기적인 청소를 필요로 하는 곳들의 순위를 매기도록 했다.
그 결과 마이크로웨이브 키패드가 주방에서 가장 더러울 것이라는 대답을 얻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뜻밖에도 블렌더의 개스킷, 냉장고의 냉온수기와 육류 및 채소 보관 칸 그리고 주걱을 닦은 면봉에서 가장 많은 세균이 검출됐다.
얼음과 물을 공급하는 냉장고의 냉온수기는 미생물이 번식하는데 필요한 습한 환경을 제공한다. 이곳에서는 건강에 특히 해로운 효모균과 곰팡이가 주로 발견됐다.
냉장고 야채 보관 칸은 살모넬라와 리스테리아도 함께 ‘보관’중인 것으로 나타났고 주걱에서는 효모균과 곰팡이 이외에 대장균도 나왔다.
냉온수기와 냉장고 야채 보관함, 주걱 등지가 세균의 살림처일 가능성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지만 블렌더 개스킷이 이들의 주요 매복지라는 사실은 의외였다.
연구원들은 블렌더를 사용한 후 분해청소를 하는 등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데서 세균감염이 일어나는 것으로 추정했다.
야카스는 매번 사용 후 제품을 파트별로 분해해서 깨끗이 닦으라는 제조사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조사에 응한 대부분의 주부들은 블렌더의 덮개만 따로 떼어놓고 몸체를 통째로 설거지통에 집어넣는다고 실토했다.
블렌더는 한 가지 종류의 과일이나 야채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채소와 야채의 끈끈한 즙이나 잔여물이 캐스킷에 들러붙어 세균들이 경작할 쏠쏠한 텃밭을 제공한다.
이렇게 되면 건강에 좋은 신선한 과일주스나 야채즙을 짜려다 ‘세균탕’을 만들어 마시는 꼴이 되고 만다.
주걱에서 대장균과 효모균을 비롯한 세균이 대량으로 검출됐다는 것도 충격적이다. 주걱 가운데서도 음식을 뜨는 앞부분과 자루부분을 분리할 수 있는 제품에서 특히 많은 세균이 검출됐다.
블렌더의 개스킷과 마찬가지로 주걱의 이음새 부분에 음식찌꺼기가 들러붙어 세균 배양기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들을 분리시켜 설거지를 하는 사람은 드물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 통조림 따개에서도 세균이 대량 검출됐다.
통조림을 딴 후 매번 오프너를 깨끗이 손질하는 사람 역시 그리 많지 않다.
야카스는 건성으로 물에 한번 헹구거나 아예 사용 후 날림 린스조차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서랍 속에 던져 놓는 경우가 태반일 것이라고 말했다.
야카스는 20개 가정을 대상으로 한 ‘현장검사’에서 찐득한 검은 때가 끼어 있는 통조림 오프너를 여러 개 보았다고 털어놓았다.
건강식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가정에서 거의 매일 사용하는 주방기구의 위생 상태에 어이없을 정도로 무심한 경우가 적지 않다.
냉장고 육류보관 칸이 세균감염에 취약하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아는 국민 상식에 속하지만 채소 보관함이 ‘위험지역’이라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마켓에서 구입한 야채는 대부분 손질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저장 칸으로 직행한다.
물론 저장 칸에 넣기 전에 물로 씻는 것만으로는 세균감염을 막기에 부족하다.
그 안에 들어가는 내용물과 함께 저장함 자체를 자주 청소해 주는 게 중요하다.
또한 씻어 놓은 야채와 씻지 않은 채소를 한 군데 뒤섞어 두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물로 씻은 뒤 건조 시키지 않은 야채나 채소를 보관함에 그대로 넣어두는 조급함 역시 세균을 키우는 결과를 가져온다.
‘보이는 적’보다 ‘보이지 않는 적’이 더 무서운 법이다. 가족의 건강은 주방의 보이지 않는 복병인 미생물과의 싸움으로부터 시작된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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