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단 한번 우는 새가 있다. 그 울음소리는 이 세상의 어떤소리보다 아름답다고 한다. 둥지를 떠나는 순간부터 그새는 가시나무를 찾아 헤맨다. 그러다가 가장 길고 날카로운 가시를 찾으면 몸을 날린다.
죽어가는 새는 그 고통을 초월하면서 이윽고 종달새나 나이팅게일도 따를 수 없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와 목숨을 맞바꾸는 것이다. 그리하여 온 세상은 침묵 속에서 귀를 기울이고 신(神) 께서도 미소를 짓는다. 그 이유는 가장 휼륭한 것은 위대한 고통을 치러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일화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인간도 행복을 위해서 가시밭길을 가고 있으며 길고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고 난후에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엄청난 일을 겪었을때나 앞으로 다가올 일이 멀고 아득할 때 꿈만 같다고 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기는지 누구나 한번쯤은 겪는 일, 운명을 좌우하는 어떤 절대자 신 앞에 항변하는 심정이 되어 이것이 꿈이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리고 꿈만 가지고 있을뿐, 인생을 새롭게 개척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힘든 삶이 이어진다. 그래서 인생은 스스로 개선의 의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생동감의 창출이 중요한 것 같다.
소박하고 소탈하게 살되 희로애락 삶에서 새벽녘 맑은 샘처럼 신선한 충족감도 필요하다. 희망을 가진 사람은 날씨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폭풍은 폭풍우대로 의미가 있고, 뙤약볕도 필요하다는 밝은 쪽을 보는 것이 희망이다. 간혹 하늘을 바라보자. 저렇게 높고 파아란 하늘도 좀 있으면 변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철따라 아름다움과 좋은 공기를 준다. 아름다움을 창조하신 신의 위대함에 감동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가시나무에도 꽃은 핀다. 고통은 인간을 성숙하게하고 겸허하게 자신을 비우게 한다. 여백(餘百)의 자연의 아름답듯이 우리도 마음의 여백을 갖자.
기회가 되면 어려운 이웃도 도와주고 남을 모함하지 말자. 인생은 우리가 원했던 원치 않았던 다른 이의 인생속에 끼어들어 선택하게 된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내일의 소망, 오늘에 대한 감사, 이것이 신앙이 아닌가. 헤르만 헤세는 ‘나로 하여금 나 자신에게 절망토록 하소서. 그러나 당신을 향해서 절망하지 않게 하소서‘ 라고 했다.
자신만의 최고의 헌신과 인내와 고통이 수반될 때 신이 귀를 기울리고 예비해준 그곳에 도달하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때로는 하루하루가 버거운 삶속에서도 이제 나는 나 자신만의 음악을 들으며 살아가고 싶다. 그동안 얼마나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았는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살았는지… 새봄의 출발점에서 깊은 사색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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