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절름발이 오리’라고 처음 부르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영국으로 원래는 ‘빚을 갚을 길이 없어 채권자에게 쫓겨 다니는 채무자’를 일컫는 말이었다. 이것이 19세기 미국으로 넘어 오면서 재선에 나왔다 지거나 더 이상 재선에 도전할 수 없어 힘이 빠진 정치인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이지만 4년 동안 똑같이 힘을 쓰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집권 첫해가 발언권이 가장 세고 그 뒤 점차로 약해지다가 재선에 성공하면 다시 한 번 반짝 한다. 그러다 집권 2기 중반으로 들어서면 급속히 영향력이 줄어든다. 이미 사람들의 관심은 현직보다 차기에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로 쏠리기 때문이다.
지난 50년 간 가장 영향력 있는 대통령으로 꼽히는 레이건도 중요한 업적은 집권 초기에 거의 다 이뤘다. 취임하자마자 불법으로 파업을 벌인 항공 관제사를 모조리 파면해 세상이 바뀌었음을 알렸고 레이거노믹스의 상징인 대대적인 감세법안도 집권 첫해 통과시켰다. 평화 시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군비 증강도 집권 초기에 이뤄졌다. 1984년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먼데일의 고향인 미네소타만 빼고 49개주를 싹쓸이 하는 압승을 거뒀음에도 집권 2기는 이란 콘트라 스캔들에 시달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 미국의 대통령인 오바마는 이념적으로는 레이건과 정반대 입장에 서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를 흠모한다. 그는 2009년 “레이건은 미국의 정치 지형을 바꿔놓았다”며 ‘좌파의 레이건’이 되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그에 따르면 민주당 출신 대통령으로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의 하나인 클린턴은 역사적으로 별 의미가 없는 존재다. 클린턴은 1996년 “큰 정부의 시대는 끝났다”며 종신 웰페어 제도를 폐지했는데 이는 레이건의 발자취를 따라 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난 주 그의 두 번째 취임사는 지난 30년간 미국 정치판을 지배해 온 레이건의 이념을 근본적으로 뒤집어엎겠다는 선언이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미국의 장래를 위협하는 재정 적자와 국채에 대해서는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 하고는 연설문의 대부분을 지구 온난화 해결과 소셜 시큐리티,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등 사회보장제도 수호, 빈부 격차 해소 등을 위해 정부의 힘을 쏟아 붇겠다는데 할애했다. 만약 그가 앞으로 4년간 이를 실현한다면 그는 레이건급 정치인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런 일은 가능할 것인가. 세상일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가능성이 그다지 커 보이지는 않는다. 오바마는 지난 50년간 재선된 대통령 가운데 처음보다 낮은 지지율로 당선된 유일한 정치인이다. 작년 선거에서 미국민의 47%가 그의 재선에 반대했고 재선 후 인기도 역대 최저 수준이다. 반면 연방 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의 그에 대한 반감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레이건이 집권했을 때 연방 의회는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었지만 민주당원 가운데는 소위 ‘레이건 민주당원’이라고 불리는 지지 세력이 상당히 있었다. 현재 공화당 내 ‘오바마 공화당원’ 숫자는 거의 제로라고 보면 된다. 이들을 뽑아 의회로 보낸 지역구 주민들의 오바마에 대한 정서는 공화당 의원들보다 더 험하다. 괜히 오바마에 타협적인 모습을 보였다간 자신의 정치 생명을 부지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는 공화당과의 협상을 사실상 포기했다. 취임 연설에서 공화당 입장에 대한 호의나 타협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오바마가 원하는 대로 국정이 풀릴 것 같지는 않다.
남은 4년이 길어 보이지만 대선이 있는 2016년은 말할 것 없고 중간 선거가 있는 2014년도 중요한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기는 힘들다. 선거를 앞두고 민감한 문제는 가급적 다루려 하지 않는 것이 정치인들의 생리기 때문이다. 그가 큰 업적을 남기고 싶다면 올해가 그 때다. 야당과의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밀어붙이기식 강경 대응으로 나간다면 오바마는 레이건급 정치인이 되기보다는 조로한 절름발이 오리가 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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