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많이 깊어졌다. 도시로 내려앉던 가을 색들도 바람에 지며 앙상한 나목들로 풍경을 바꾼다. 이제 머지않아 순백의 숲으로 주위를 감싸 안으며 침잠의 소리들을 불러올 것이다. 이런 계절이 되면 난, 한 보따리의 책을 챙겨 들고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 싶어진다.
따스한 담요가 깔려 있는 작은 방이거나 타닥거리며 나무 타는 소리를 내는 화덕이 있는 곳이면 더 좋을 것이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향긋하고 뜨거운 커피 한잔을 들고 편안한 소파에 깊게 묻혀 종일 꼼짝 않고 책을 읽을 수 있다면 그 시간은 참으로 행복할 것 같다.
그리고 생각나는 데로 몇 자 적어둘 수 있다면 단상들은 다음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며, 가슴이 따뜻해질 것이다.
그러나 꽉 짜인 일상은 내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모아둔 휴가가 없는 것도 아닌데, 순전히 책을 읽기 위해 쓴다면 억울할 것 같다는 것은 내 사고의 편협함에서 오는 것이리라.
휴가를 받으면 꼭 어디론가 여행을 해야 하고, 뭔가 생산적인 것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그런 사고의 틀을 깨기 전에는 순전히 책을 읽기 위한 휴가는 엄두도 못 낼 일이지 싶다.
허나, 여행길에 책 보따리를 끼고 가는 경우는 종종 있다. 긴 운전의 옆자리에서, 여행지의 잠자리에서 책을 펼쳐 들고 밤을 새운다. 신기한 것은 책을 읽기 시작하면 밤을 새우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 옛날, 밤새 공부를 해야 했던 시절에도 연애 소설 등등 읽고 싶은 책만 집어 들면 꼬박 밤을 새우는데 문제가 없었다.
요즈음 부쩍, 문우들로부터 책을 많이 받았다. 수필집, 소설집, 시집, 모두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낸 책들이다. 그리고 인터넷 서점에서 꽤 많은 분량의 책이 도착했다. 읽을 거리가 책상 위에 쌓이자 마음이 뿌듯하다.
내가 즐겨 읽는 책들은 주로 문학 서적이다. 일상의 잔잔함이 묻어 나는 수필집을 좋아하고, 수채화 같은 소설들을 주로 읽는 편이다. 생활인에게 유용하다는 베스트셀러는 별 거부 반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주 드물게 손에 잡게 된다.
시집인 경우 여러 번 읽어야 하는 어려움을 감내해야 하지만, 행간의 의미를 찾으며 감동을 할 때, 나도 시인이 된 듯한 감흥에 빠진다. 그리고 어떤 책이 되었던 간에 먼저 초벌 읽고, 그 다음은 밑줄을 치면서 꼼꼼히 읽는다.
한번 더 읽어야 할 것 같은 부분은 접어 두었다가 또 다시 읽곤 한다. 따라서 속독을 요구하는 책들은 즐길 수가 없다. 혹, 미국 역사의 한 장을 새로 쓸 대통령의 자서전을 읽게 된다면 그때는 사전을 옆에 끼고 공부하는 것처럼 읽어야 하리라.
또 하나, 책 욕심이 많아 여러 번 읽은 책들도 누구에게 주길 거부한다. 간혹 빌려 가는 사람들이 있을 때면 날짜, 이름, 전화번호까지 적어 놓은 쪽지를 책장에 붙여 놓고 책이 돌아올 때를 기다린다.
어찌되었거나, 이제 시도해 볼 일은 휴가를 내는 일이다. 전화도 하지 않고, 외출도 금하고, 샤워도 하지 말고, 커피와 빵 조각 몇 개로 식사를 해결하며 한 일주일쯤‘방콕’하여 책 읽기를 해 본다면, 참으로 짙은 색의 가을을 잘 지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옆에 있는 사람이 이해해 주고 참아 준다면 말이다.
정보에 의하면, 뉴욕의 맨하튼에는 도서관 호텔(Library Hotel) 이라는 곳이 있단다. 6,000권의 장서를 구비하고, 각 층마다 장르별로 구분되어 있어 투숙객의 기호에 맞추어 머무를 수 있는 호텔.
책을 읽기 위해 휴가를 내는 사람들이나 업무차 여행 중이더라도 늘 책을 끼고 사는 독서광들은 한번쯤은 가 볼만한 곳이 아닐까 싶다. 여유롭게 아침 식사를 하며 책을 읽고, 창 밖의 풍경을 내려다 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호사를 부릴 수가 있겠지.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 만을 위한 여유는 내게 너무 큰 사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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