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산불로 피신 명령을 받고 이재민이 되어 친구네 신세를 졌던 것은 한 일주일 정도였다. 차고 앞까지 검붉은 연기가 밀려들며 질식 할 것 같았던 그날 오후, 서둘어 길을 떠나며 허둥대었던 시간이 지났고 집으로 돌아 왔다. 창틀과 베란다에 가득 앉은 검은 재들을 치우기 위해 물청소를 하며 가슴을 쓸어 내린다. 청소는 주말에 이어 독립 기념일의 휴일까지 이어졌지만 창을 열기만 하면 검은 먼지들이 스멀 스멀 기어 들어왔다. 주일 아침, 성당을 가기 전 또 젖은 걸레를 들고 구석 구석을 닦는다.
청소를 하며 아침 뉴스를 보는데 한 리포터가 사연을 전한다. 은퇴한 노부부, 원시림이 가득한 수려한 숲 속에 좋은 집을 갖고 있었다. 순식간에 동네를 덮쳤던 이번 화마에 6천 스퀘어 피트가 넘는 꿈의 전원 주택인 삶의 터전을 한 순간에 잃고 말았다.
허리를 굽힌 채 작은 뜰채로 화마의 흔적인 잿더미들을 거르고 있었다. 리포터가 다가가 무엇을 찾느냐고 묻자, 허리를 펴며 안방 장롱이 있었을 부근에서 결혼 반지를 찾는단다. 종일 손으로 뒤지고 채로 걸렀더니 일그러지고 검게 변하긴 했지만 결혼 20주년 기념 선물이었던 팔찌가 나왔다며 들어 올려 보여 준다. 지금은 40년이 넘은 결혼 반지를 찾고 있는 중이란다. 녹아 버렸을지도 모르겠다며 잠시 허탈한 표정이 얼굴을 스쳤다. 그것이 두 부부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이어서 꼭 찾고 싶다는 말을 하며 다시 뜰채를 집어 들고 잿더미를 뒤진다.
화재 보험도 있고 다시 집을 지을 터는 있지만 노부부가 간직해 두었던 추억은 검은 흔적이 되고 말았다.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주름이 굵어 보였던 노 부부의 얼굴.
그리고 한 블락 아래 동네에서 한 가족을 인터뷰했다. 신기한 정도로 열기를 피해간 작은 텃밭. 푸른 토마토가 조롱조롱 달린 실한 줄기들. 그 앞 줄의 향료 식물들. 그리고 밭을 바라보게 놓여 있는 나무 벤치. 말짱한 채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중년의 부부와 아들 딸이 벤치에 앉아 타다 남은 집터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바로 옆집인 이웃은 재 하나도 묻지 않은 포슬린 인형 한 쌍을 찾았다며 보여 준다. 결혼 1주년 기념품이었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동네의 끝 자락에는 “소방관 여러분, 저희들을 지켜주셔서 감사 합니다. 혹은 사랑하는 주민 여러분 힘냅시다. 우린 또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같은 문구들이 써 있는, 서툴게 손으로 만든 프랭카드들이 여러 개 붙어 있었다. 이웃들의 마음이 전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울컥하였다.
청소가 끝나 가는 주말 오후, 산쪽의 이웃을 좀 돌아 보기로 했다. 혹 건네 줄 수 있을까 싶어 물도 몇 박스 실었다. 심하게 손상된 도로와 집들이 있는 곳은 아직도 주 방위군들이 지키고 있었다. 경찰차들도 쉬지 않고 순찰을 했다. 어떤 집은 뒷마당과 붙어 있는 언덕까지 검은 흔적을 남기고도 집은 말짱했고 또 어느 집은 담장은 말짱했지만 집은 전소한 곳도 있었다.
여기 저기 아스팔트가 파여 진 것을 보니 바람을 타고 불 벽을 만들며 미친 듯이 민가로 내려오던 화마와 싸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소방관들의 모습도 상상이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도 왈도 캐년(Waldo Canyon)화재라고 명명된 이 현장을 답사한 후 재해지구로 선포했다. 주택 350채와 상업용 건물들을 태워버린 화재. 콜로라도 역사상 화재로 인한 가장 큰 피해라고 한다. 아직 이재민 1200 여명이 보금자리로 돌아 가지 못했다. 화재 발생 후 2주일 만에 도시 전체는 일심 단결하여 서로 도우며 복구를 시작하려 한다.
지난 이틀 동안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조금 만 일찍 이 비가 내려 주었더라면 화마의 기세도 덜 했을 터이고 소방관들과 방위군, 경찰 들의 수고도 좀 덜 수 있지 않았을까. 인간은 자연 앞에서 얼마나 작고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 이제 검은 재는 날리지 않는다. 타다 남은 지프 차 뒤에 누군가 꽂아 놓은 성조기가 잔 바람에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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