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가 읽어보라며 책을 한 권 선물했다.
김경은 여류 작가가 쓴 "여자의 인생이 누려야 할 65가지"라는 제목이었는데 살면서 누려야 할 것이 어찌 65가지만 되겠냐만, 그나마도 누리지 못하고 사는 여성들이 많은 것 같다. 특히 이민 생활에서 우리 여성들은 더더욱 일을 많이 하는 편이다. 가족과,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면서도 정작 본인에 대한 투자는 늘 뒷전으로 쳐지기 때문이다.
조각가인 내 친구 하나는 예술에 대한 감각과 열정이 넘치는 멋진 여성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녀는 그 아름다운 재능의 끼를 가두면서 살고 있는 것 같다. 가끔 그녀는 내게 “남편이 싫어하기 때문에 홀로 서기를 할 수가 없어요” 말하면서 속상해 한다. 그러면서도 편한 삶에 스스로 안주해 가는 그녀에게 왠지 안타까운 느낌이 드는 것은 왜 일까…프랑스 시인 시몬느 베이유(Simone Weil)는 "사랑이란 상대와 자신의 거리를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정작 우리들은 서로에게 집착하고, 속박하며, 서로 간에 한 치의 거리도 없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 하는 것이 아닐까?
책의 저자 김경은이 열거한 65가지 외에 나는 <때로는 혼자만의 여행을 떠날 줄 아는 용기>를 한가지 더 추가 하고 싶다.
변화를 싫어하고 참을성이 많은 나의 남편과 그 반대의 성격을 가진 나는, 둘이 서로 잘 안 맞을 것 같지만 실질적으론 서로를 이해하면서 잘 지낸다. 남편은 되도록이면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내 지나간 삶이 아래의 <마종기>시인의 시처럼 안정된, 그러나 <쓸쓸한 물> 이었음을 자각하게 된 아내를 이해하자고 마음 먹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남편이 나는 늘 고맙다.
불꽃은/뜨거운 바람이 없다면/움직이는/그림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불꽃이 그림으로 완성된/안정된 세상의 쓸쓸함
내 고통의 대부분은/그 쓸쓸한 물이다
나는 때때로/그날을 생각한다/순결의 물을 두 손에 받들고
다가오던 발소리의 떨림/가득 찬 물소리에/나는 몸을 씻고 싶었다
떨지 않는 물은 단지/젖어있는 무게에 지나지 않는다
.“쓸쓸한 물” 전문 <마종기>
지난 주에 나는 모처럼 일탈을 꿈꾸며 홀로 여행을 다녀왔다.
목적지는 바다와 등대가 한 폭의 파스텔화처럼 아름다운 멘도시노(Mendocino)로 정했다.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진 소노마(Sonoma)동네를 지나면 101번 국도에서 1번 해안 도로를 만나기 위해 관통하는 70여 마일 구간의 128번 도로가 나온다. 이 길은 그야말로 환상의 구비구비 산 길이다.
길 양 옆으로 빽빽하게 정열 된 레드우드 숲과 깊은 계곡을 끼고 달리다 보면 은멸치 떼 비늘처럼 햇빛에 반짝이는 탁 트인 바다를 갑자기 맞닥트린다. 이 바다를 옆으로 휘감고 달리다가 멘도시노 다운타운에 들러 따끈한 Clam Chowder Soup과 과일 몇 개를 사 들고 예약된 아담한 캐빈으로 갔다.
오후의 햇살은 따스했고 깊은 숲 속의 젖은 솔 향기가 통나무 집 안에 낮게 가라 앉아 있었다. 창가에 놓인 꽃무늬 소파에 앉아서 아이패드를 꺼내 음악을 잔잔하게 틀어 놓고, 가지고 간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평화로움 속에 해는 지고 밤이 되었지만 모처럼 얻은 나 만의 시간 속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밤새 비가 내리는지 지붕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어느덧 새벽이 왔고 서성이던 나의 마음은 마종기 시인의 시처럼 <쓸쓸한 물에서 떨리는 물>이 되어 바르르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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