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 망신’인가 ‘관행’인가
▶ 이 대통령 미 의회 연설문 미 컨설팅 전문회사서 자문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0월 12일 오후 워싱턴 윌러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미 상공회의소 주최 한미경제인 오찬에서 토마스 도너휴 미상공회의소 회장(왼쪽), 윌리엄 로즈 한미재계회의 위원장과 건배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달 미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의회와 백악관 등 각종 행사에서 행한 연설이 미국의 연설문 전문 컨설팅회사 ‘웨스트윙라이터스 유한책임회사’(West Wing Writers LLC)의 자문을 얻어 작성된 사실이 알려져 한국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웨스트윙’이 미국의 ‘외국에이전트등록법’(FARA)에 따라 지난 달 19일 법무부에 신고한 내용을 보면 ‘웨스트윙’은 이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주미한국대사관과 4만6,500달러 컨설팅 ‘합의각서’(MOA)를 체결했다.
‘웨스트윙’은 이 합의각서에 따라 대사관에 제공한 서비스를 “등록인(웨스트윙)은 이 대통령의 워싱턴 D.C. 방문에 앞서 대사관에 의회와 미국의 청중들에 대한 분석과 전략적 자문을 제공했다”며 “또 (이 대통령의) 의회 공동회의 연설 초안, 미국상공회의소 연설 초안, 백악관에서의 3개 연설의 간단한 초안을 진전시키고 이들 초안들에 대해 취한 전략적 방향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비망록을 포함시켰다”고 신고했다.
한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같은 사실이 공개되자 야당인 민주당은 7일 “외교적 망신거리”라고 비난하고 나섰다.민주당 이용섭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가의 철학과 가치가 담겨야 할 대통령 연설문을 상대국 ‘로비업체’에 의뢰하고, 거기에 국민의 세금까지 낭비한 상황을 우리 국민이 도대체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 같이 평가했다는 것이다. 또 홍재형 국회부의장은 8일 민주당 원내국회회의에서 연설문이 미국 컨설팅 회사에 맡겨진 것에 대해 “나라망신”이라며 “미국 의회나 행정부에 잘 보이고자 하는 이명박 정부의 방미 목적에 따른 것”이라고 비난하고 “국회 상임위 차원에서 연설문 초안 원본의 국회 제출을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임태희 청와대 대통령 실장은 “과거부터 내려오던 관행”이라며 “해외를 방문하면 각 연설 기회에 어떤 것을 강조하는 것이 좋은지 해당 대사관에 조사를 해서 자료를 보내오고 있는데 그 중 미국업체가 대상기관이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그러나 참여정부에서 홍보기획관을 지낸 양정철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은 “(순방 연설을 외국 업체에 맡기는 것이) 관행적이라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내가 주무비서관이었는데 전혀 그런 일이 없다. 해외 대통령 순방 연설은 극비사항”이라고 반박하고 나섰고 민주당 김헌 부대변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 측 인사의 말을 인용, “국민의 정부 때는 김 전 대통령의 직접 구슬에 의해 작성했기 때문에 (연설문 외주 제작은) 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해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 긍정 보도 건당 돈 지불
사실 한국 정부가 미국을 방문하는 대통령의 대미활동을 위해 미국의 컨설팅 회사와 계약을 체결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법무부 FARA 신고 기록에 따르면 주미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KCS)은 2003년 5월15일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와 관련 버지니아주 ‘한미 컨설팅사’(KCI)와 1만 달러 대외홍보 컨설팅 계약을 체결했다.계약은 KCI가 노 대통령 방미에 대한 KCS의 언론 관계 행정을 지원하는 내용이며 구체적으로는 KCI가 노 대통령 도착, 뉴욕 회의, 코리아 소사이어티 연설, 조지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 의회 지도자들과의 만남, 샌 프란시스코 회의와 관련 한국정부가 언론에 배포할 노 대통령의 뉴욕과 워싱턴 D.C. 주요 행사들의 보도자료, 연설문 등 참고자료에 대한 검토와 교정, 제안 및
자문 서비스를 제공키로 한 것이다.또 한국 정부 관리들이 KCS 미디어 센터에서 국내외 언론을 상대로 갖는 기자회견에 대한 예상 질문과 답변에 대한 사전 준비도 맡았다.
특히 이 계약은 KCI가 “자격을 갖춘 2∼3명의 저자들이 ‘전문 의견 해설 기사들’을 작성, 특정 미국 신문사들에 기고토록 요구한다”와 그 대가로 KCS가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워싱턴 타임스’, ‘LA 타임스’ 등과 같은 주요 미국 신문사들에 게재되는 기고문 건당 500 달러 보수를 저자들에게 직접 지급할 것“이라는 내용의 지원 이행 조항이 담겨있어 노 대통령 방미에 맞춰 미국 언론의 긍정적인 해설 기사를 돈으로 사려고 했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 역대 대통령 방미
이는 노무현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FARA 기록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김대중 대통령이 1997년 7월 필라델피아 자유메달을 수상하기 위해 방미했을 당시에도 주뉴욕총영사관 문화원을 통해 미국 전문 홍보 컨설팅회사 ‘알칼데이 앤 페이’(Alcalde & Fay)와 언론 관계 행정 지원 ‘업무 계약’을 체결하면서 “언론이 한국 대통령 방문에 긍정적으로 기울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특히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에는 그가 대통령이 되기도 훨씬 이전인 1992년 12월 방미와 관련
당시 미주한인 한국 정계 진출을 꿈꾸던 박지원(전 청와대 대변인)씨가 컨설팅 계약을 체결한 ‘고란 인터내셔널’(Gowran International)을 통해 보도자료와 홍보물을 언론, 정치인, 단체들에 배포했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인 1998년 6월 미국 국빈 방문 당시에는 주미한국대사관 ‘한국해외홍보원’(KOIS)이 연 30만6,000 달러에 계약한 홍보 전문 컨설팅 회사 ‘제퍼슨 그룹’(Jefferson Group)을 통해 각종 행사 연설문과 보도자료 작성, 대외 언론 홍보 등에 대한 자문 서비스를 제공 받았다.
이 회사는 김영삼 대통령의 1995년 미국 국빈 방문 당시에도 주미한국대사관 ‘한국해외홍보원’(KOIS)이 연 30만6,000달러에, 주미한국대사관이 연 15만 달러에 각각 체결한 계약에 따라 각종 행사 연설문과 보도자료 작성, 대외 언론 홍보 등에 대한 컨설팅 서비스를 한국 정부에 제공했으며 노태우 대통령 당시에는 주미대사관 홍보실이 아예 1990년 5월 대사관에 출퇴근하는 대외 홍보 전문 계약직 직원 페트릭 니버그(Patric E. Neiburg)를 연 3만6,000 달러에 채용해 대사관과 한국 정부 방미 인사들의 연설문, 보도 및 홍보자료 작성 등 업무를 전담케 했다.
- 영상물 통한 홍보
박정희 대통령 당시 한국의 대외홍보는 1970년 9월 주미한국대사관 ‘국가공보처’(KIO)가 영상물 배포 전문대행 업체인 ‘현대교육서비스사’(Modern Education Service, Inc)와 계약을 체결해 한국을 소개하는 16 mm 홍보 광고 ‘코리아‘(Korea)를 영상토록 하고 성사 건당 15 달러 조건에 미국 방송국을 통해 방영되도록 하는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 회사는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정권까지 주미대사관, 한국관광공사, 뉴욕총영사관 한국문화원, 샌프란시스코총영사관 등과 체결한 계약을 통해 한국 역사, 자연, 경제, 사회, 관광과 88 서울올림픽 등 한국 홍보 영상물 및 언론 보도 자료들을 TV, 케이블, 인공위성 방송과 신문 언론 매체들에 제공해 보도되도록 하는 대행 서비스를 계속했다.
한편 법무부 FARA 기록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 정권 당시(2003년 2월25일∼2008년 2월24일) 한미 관계 증진을 위해 미국 ‘에이전트’(Agent)들과 총 174만 달러 상당에 달하는 ‘컨설팅’ 계약을 체결해 역대 대통령 중 최고 관련 비용 지출을 기록했으며 그 다음으로는 총 51만 달러 컨설팅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집계된 김대중 대통령 정권 당시(1998년 2월25일∼2008년 2월24일)였다.
<신용일 기획취재 전문기자> yi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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