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포토맥 포럼 초청 특강에서 장수영 박사가 강동 6주와 강감찬 장군의 귀주 대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태종은 정치적인 이유에서 정인지 등에게 고려사에 대한 기록을 고치게 했다. 또 일제 강점기 왜곡된 사관으로 고려에 대한 바른 역사가 기록되지 않았다. 1천여년전 우리의 잊혀진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포항공대 총장을 역임한 공학자로 역사학에도 조예가 깊은 장수영 박사는 11일 포토맥 포럼(회장 이영묵) 초청 특강에서 “고려 영토는 드넓은 만주의 요하 동쪽 모두를 포함했다”며 “현재 모든 교과서에 강동 6주의 위치를 평안도에 있었던 것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강동 6주와 강감찬 장군’을 제목으로 한 특강에서 장 박사는 “거란은 고려를 세 번 침공했다. 그 첫 번째가 993년 거란이 소손녕을 대장군으로 내세운 침략이었다. 서희의 담판으로 압록강 동쪽의 6주(강동 6주)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현재 모든 교과서에는 강동 6주가 압록강 동쪽 구간의 흥화진(의주), 용주(용천), 철주(철산), 통주(선천), 곽주(곽산), 귀주(귀성) 등 6개 지역을 지칭한다고 적혀 있다.
이에 대해 장 박사는 “일제 치하 일본인들의 주장에 따라 강동 6주의 위치를 모두 압록강 이남 평안도에 있던 것으로 해놓았다. 그러나 강동 6주는 현재의 평안북도 압록강(압강)이 아닌 요하 동쪽에 있는 동명의 압록강 인근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강동 6주라는 표현은 틀렸으며 엄밀히 하면 강남 6주가 맞다고 반박했다. 중국 역사서에도 요하의 서쪽은 거란땅, 동쪽은 고려영토로 인정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또 고려말 1388년 최영 장군의 요동 정벌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 박사는 거란군을 전멸시켜 귀주대첩 승리를 이끈 고려의 강감찬 장군에 대해서 “1010년 거란왕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한데 이어 1018년 거란군 10만이 다시 침략했다. 1019년 강감찬은 귀주성(龜州城) 앞 평원에서 거란군을 크게 물리쳐 승리했다”고 설명했다.
강좌 후 질의 응답시간에는 많은 참석자들이 질문을 던지며 큰 관심을 드러냈다. 정종욱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제라도 그동안 왜곡됐거나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 후세대들을 위해서라도 한국의 국사편찬위원회 등에 알려 바른 역사 기록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모임에는 박찬모 박사(전 포항공대 총장)와 한인섭 전 VOA국장 등 40여명이 참석했으며 브래덕 디스트릭 수퍼바이저 경선에 뛰어든 문일룡 교육위원이 한인들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와 후원을 호소했다.
<
정영희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