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가주 한인사회의 큰 별이 졌다.
그동안 몸 사리지 않고 한인사회 일에 정열을 불태웠던 김근태(사진) 전 SF한인회장이 18일 새벽 3시께 향년 71세로 별세했다. 사망원인은 심장마비로 알려졌다.
고인은 부여고등학교와 명지대학교 문리대를 나와 1975년 텍사스 휴스턴으로 이민 왔다.
이후 1977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 북가주 한인 사회의 마당발로 불릴 정도로 대소사에 앞장서 왔다.
“한인사회 리더 잃었다” 통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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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사회 발전위해 30여년 헌신
장례는 ‘한인회 장’으로 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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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된 김근태 회장은 이스트베이 한인봉사회 이사, 이스트베이 한국학교 이사장, 이스트베이 한인회장, 20대 SF한인회장, 이스트베이 한미노인봉사회 이사, 상조회 회장, SF평통 회장, 미주총련 부회장, 한우회 회장, 미주한인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 SF지역회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 페리항에서 친일파 스티븐스를 저격한 장인환, 전명운 의사의 의거를 기리기 위한 동상 건립도 그의 집념에 의해 이루어져 2003년 6월 9일 제막식을 거쳐 현재 SF한인회관 강당에 놓여있다.
당시 한국노인회장의 주도로 1979년 발족된 동상건립위원회에서 부위원장을 맡았지만 한인사회의 무관심으로 지지부진하다 지난 2003년 6월 김 회장의 집념으로 두 의사의 동상이 건립됐다. 그는 동상 건립을 위해 한국에 가서 독립기념관, 보훈처, 대한광복회 등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호소했고, 결국 5만달러의 기금을 조성하는데 성공했다. 20여년 만에 이뤄 고집의 승리였다.
고인은 이민100주년 사업회장을 맡으면서 2004년 발행된 ‘북가주 이민 100년사’ 편찬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외에도 북가주에서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종횡무진하며 한인사회 발전에 기여했다.
이같이 만사를 제쳐두고 봉사한 공로로 2006년 한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다.
그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은 지인들은 “김근태 회장은 떠났지만 중가주 리들리의 초기 한인 이민자 묘소의 대리석 의자에 새겨진 망국의 슬픔을 노래한 고인의 시는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김 회장의 갑작스런 사망소식이 알려지자 다음날인 18일 SF한인회 권욱순 현 회장을 비롯해 전직 한인회 회장들이 샌프란시스코 산왕 식당에서 모임을 갖고 깊은 애도를 표했다.
이날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김근태 회장의 장례를 ‘한인회 장’으로 치르기로 합의했다.
권욱순 회장은 “김근태 전 한인회장께서 갑작스럽게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고인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며 “고인이 각별히 사랑하셨던 한인회에서 장례를 진행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면서 한인사회 어르신을 잃었다고 통탄해 했다.
한편 고 김회장의 장례일정은 5일장으로 할지 7일장으로 할지 18일밤 현재 아직 결정이 되지 않았다.
▲장례문의: SF한인회 (415)252-0432
<김판겸 기자>pkk@koreatimes.com

고 김근태 전상항지역 한인회장이 지난 2003년 1월 열린 이민 100주년 기념 행사에서 김종훈 당시 샌프란시스코 총영사(현재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로부터 감사패를 전달받고 있다.<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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