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에 가면/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그 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풀잎되어 젖어 있는/
비애(悲哀)를/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衣裳)으로/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얼굴을 다치면서라도/소리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사람들은/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愛情)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질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그 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하면/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우울한 샹송, 이수익)’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보내려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 행복으로 터질듯이 웃고 있는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시인은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지, 떠나간 사랑이 처음의 그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런지 상념에 젖는다. 그리고, 사랑을 잃은 사람의 쓸쓸함과 그 사랑을 찾고 싶은 간절한 마음, 기다림을 시에 담아내고 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했던 90년대 초반만 해도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종이 위에 한자 한자 사연을 써내려 가면서 여러가지 빛깔의 마음을 담았고, 그 편지를 부칠까 말까 망설이면서 우표를 붙여 보냈고, 또 언제올지 모를 답장을 막연히 기다리고는 했다. 그리고 전화 한통을 걸기 위해 공중전화 앞에서 줄을 길게 서서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길이 막히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약속 장소에 오지 못하는 사람을 영문도 모른 체 기다리고는 했었고, 그로 인한 오해로 멀어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처럼 바로 연락이 닿지 않았던 그 시절은 그리움과 기다림, 그리고 망설임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던 시절이었다.
전자책의 판매율이 종이책을 넘어섰고, 전자 우편과 휴대 전화의 대중화로 공중전화와 우체통이 사라지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 네트워크로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사람들의 소식을 쉽사리 알고, 멀리 있어도 컴퓨터로 연결된 화상 채팅으로 그리운 얼굴을 보고, 인공 위성 추적 장치로 전화 받는 사람의 위치까지 파악할수 있다. 컴퓨터 문명의 편리함이 일상이 된, 그래서 이제는 편지 한장을 보내고 답장이 오길 기다리는 그 며칠의 인내심도 기대하기 힘든 세대에게, 이 시는 마치 오랜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한 아득한 느낌으로 다가올 듯 하다. 그래서일까? 모든게 더 빠른 빛의 속도로 달려만 가는 시대에 오랜 생각 끝에 한 문장을 쓰는 일은 부질없다는 듯, 요즘 현대 작가들의 작품은 점점 가벼워진다. 문학이 주던 깊은 사유의 향기와 문장의 아름다움 대신,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나질 않고, 인스턴트 식품을 먹고 난 듯 마음에 헛헛함이 남는다.
필름을 인화지에 담아 낸 사진들, 공중 전화기와 우체통들, 종이의 감촉을 느끼며 한장 한장 읽어가는 책들, 친필로 써서 보내는 편지들, 생일 카드나 초대장……바쁜 일상 속에서 기다려야 하는 것들은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예전처럼 편지를 쓰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연을 보내기 위해 서성이던 우체국도, 그래서 우체국에 가면 행여 잃어버린 사랑을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던 안타까움도 점차 희미해져간다. 마음에 익숙했던 것들이 빛 바래지며 사라져가고, 그것들과 함께 했던 따뜻한 기억들도 지워져 간다. 세상은 점점 편하고 빠르게만 변해 살기는 좋아지는데, 그래도 소중한 무언가를 자꾸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건 왜 일까. 다소 더디고, 불편하고 안타까운 시절을 살았기에, 그래서 이 시 한편의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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