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데 어려움이 없었던 아내가 정형외과를 찾은 것은 무릎 통증이 점점 심해질 무렵이었다. 혈액 검사를 하고 엑스레이를 찍은 후 의사는 무릎 안에 있는 물을 뺄 것을 권했다. 아내는 어두운 얼굴을 한 채 병원을 나왔다. “가까운 수영장으로 데려다주면 물속에서 운동하면서 경과를 본 다음 결정할게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조용히 건넨 말이었다. 며칠 후 아내를 태워 수영장으로 갔다. 수영장 안에는 지도 강사의 율동에 맞추어서 사람들이 운동하고 있었다. 50대에서 80대에 이르기까지 나이 든 분들이었다.
오늘도 옆 좌석에 아내를 태우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아내의 무릎 통증은 조금씩 가라앉는 듯했다. 아내는 물속 운동 덕분이라고 믿었다. 걷기도 수월해 보였다. 아내와 함께 수영장으로 가는 시간은 그날의 일과를 의논하는 소중한 대화의 시간이었다. 수영을 마친 후 시장에 가는 일, 친구 방문하는 일, 딸에게 보낼 음식을 준비하는 일을 의논하는 것도 이때였다. 아내와 함께 수영장을 다니기 전에는 대화를 나눌 시간이 많지 못했다. 서로의 일로 하루가 바쁘게 시작되고 저녁이면 하루를 정리하는 데도 바빴다.
수영장으로 동행하는 동안 하루의 계획을 서로 주고받는 것은 하루를 설계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온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일이 생각났다. 주로 어머니가 일과를 의논하고 대화를 이끌어 갔다. 우리 형제들은 그 전날 학교에서 친구들과 공차기하며 놀았던 일, 수업 시간에 장난치다가 선생님의 주의를 받았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웃음을 나누었다. 집에서 나누었던 그 대화는 가족의 끈끈한 정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찰스 디킨스는 그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에서 지중해를 사이에 둔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 간의 공간을 뛰어넘는 대화를 전해준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대화를 통해 고난을 견디고, 서로에게 용기를 전해주었다. 그 대화는 바다를 건너 인간애를 펼친다. 그것은 단순한 소통을 넘어 삶을 바꾸는 위대한 힘을 발휘하였다.
행복했던 순간들을 뒤돌아보면 주변에는 늘 동행하며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옆집에 살고 있던 급우가 있었다. 그와 함께 오리 길을 걸으며 등, 하교 시간에 즐거운 대화를 나누곤 했다. 아침을 먼저 먹은 사람이 문밖에서 기다려 주었고 하교 때는 교실 밖에서 서로를 기다려 주었다. 몸에 열이 심하게 날 때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의사 선생님께 데려갔다. 세상을 떠나기 삼 개월 전쯤 아버지는 멀리 분가해 살고 있던 우리 집을 찾아왔다.
며칠 동안 머문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가던 날 기차역까지 함께 걸었다. 짧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정을 숨기지 못했다. 승강장에서 배웅하던 아들에게 아버지는 손을 흔들었다. 아들이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아버지는 손으로 대화를 전달해 주었다. 긴 세월 동안 동행해 준 아버지가 남겨준 가장 소중한 유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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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두 서북미수필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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