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커스 바가스 한인 단원 빅토르 김씨
▶ 할아버지는 일제때 소련이주 고려인, 서커스단 따라 유랑끝 미국으로 이민
“한류광인 백인 애인 때문에 한국말을 조금은 알아요”
미 서커스계에 드물게 김씨라는 성을 가진 곡예사가 있다. 6살 때 미국에 이민온 빅토르 김(23)은 최근 헤이워드 공연에 이어 4일부터 15일까지 산호세에서 공연이 열리는 서커스 바가스에서 약 5분간 독무대를 차지하는 곡예사. 소련의 고려인 출신으로 파란만장한 것으로 보일 수 있는 가족사는 그에겐 그저 평범하다고 했다.
“친할아버지는 일제 때 오늘의 북한 국경 인근 소련의 극동지역에 정착했어요. 나중에 러시아의 유럽 지역으로 이주하셨지요. 아버지는 소련군에서 제대한 후 대대로 서커스 유랑단원들이었던 러시아계 집안의 딸인 우리 어머니를 만나 결혼하면서 서커스 곰을 키우게 돼 나도 어릴 적 부모형제와 함께 곰들을 데리고 아프카니스탄, 루마니아, 동유럽 등에서 투어했던 기억들이 생생합니다”.
김씨는 또 “우리 집은 다른 고려인들에 비해 큰 고생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스탈린의 결정으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대다수의 고려인들과 달리 아버지의 가족이 자의에 따라 서부 러시아로 갈 수 있게 된 이유는 모른다고 했다. 그는 “나는 동유럽 사람”이라고 밝혔다.
서커스 집안은 동유럽 일대를 ‘유랑’했지만 공산체제의 특성 때문에 생계가 보장되던 서커스단들이 하나둘씩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을 때 김씨 가족은 서커스 바가스와 함깨 미국의 양대 서커스인 링링브라더스의 초청으로 곰 세 마리와 함께 미국에 이민 왔다.
“링링브라더스와의 전속계약으로 미국에 와서 전국을 돌며 곰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나는 ‘에리얼 스트립스(areal strips, 링 체조와 비슷)’라는 곡예를 하면서 가족이 해 오던 서커스를 이어갈 수 있게 됐어요. 그러나 내가 13세 되던 해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하셨고 그래서 아들 둘을 키우고 계셨던 어머니는 고심 끝에 곰들을 야생보호구역에 기증했어요. 나는 다행히 에리얼 스트립스를 잘 해서 경쟁사격인 서커스 바가스에 영입돼 내 주특기를 잘 살리고 있지요”.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고려말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내가 그나마 아는 한국말은 다 애인 덕분이에요. 그녀의 아버지는 웨일스계이고 어머니가 멕시코계이지만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고 한국팝송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도 몇 마디를 배울 수 밖에 없었지요. 앞으로 한국말을 더 배우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서커스 공연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
<서반석 기자> seobs@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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