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한인 정치 도전사가 올해로 20년을 맞았다.
1991년 당시 변천수씨가 뉴욕일원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뉴욕시의원 제20지구 선거에 출사표를 내민 뒤 지금까지 테렌스 박, 정승진(미국명 SJ), 케빈 김, 론 김(한국명 태석), PJ 김(한국명 진해), 존 최(한국명 용준), 아그네스 김(한국명 은철)씨 등 모두 8명이 주류 정치계에 도전장을 던졌다. 이 가운데 테렌스 박, 정승진, 아그네스 김 등이 민주당 지구당 대표로 당선됐고 론 김이 민주당 사법총회 대의원으로 당선됐다.하지만 지구당 대표와 사법총회 대의원은 정치인이라기보다 지역 내 민주당원을 대표하는 성격으로 정치인 진출을 위한 교두보일 뿐 실제 정치인으로 분류하기는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1991년 뉴욕시의원 선거에 첫 도전장
뉴욕한인 정치도전사의 첫 막을 연 변천수씨는 1962년 LA 한인회의 전신인 남가주 한인회 창립위원장을 역임했는가 하면 플러싱한인회장과 뉴욕한인 인권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1990년 당시 뉴욕시청 앞에서 열린 한·흑 갈등 해소를 위한 시민운동인 9·18 평화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것을 계기로 정치에 도전하게 된다. 변씨는 “9·18 평화대회 개최 후 한 유대계 청년이 찾아와 정치입문을 권했다”며 “이 청년의 도움으로 정치 입문을 위한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은 뒤 1991년 시의원 선거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변씨의 도전은 당락 여부를 떠나 한인 정치도전사가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당시 지역 내 한인
유권자가 고작 70여명뿐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당 텃밭인 플러싱에서 변 씨는 공화당 후보로 출마,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줄리아 해리슨 당시 시의원과 본선에서 격돌해 4,000여표를 획득했다. 물론 1만5,000표를 얻은 해리슨 당선자에 비해 한참 적은 표를 얻었으나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 등을 비롯한 공화당 거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며 한인사회에 대한 존재감을 주류사회에 알리는 기회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0년대, 주류 정계 진출을 위한 기틀 마련
그러나 변 씨의 도전 이후 후발 정치도전 주자를 만드는데 한인사회는 10년간의 공백기가 흘러야 했다. 백인 주류 정치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정치사회의 벽은 높았고 한인 유권자들의 숫자는 아직 미비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유권자 등록과 정치후원 활동을 통해 정치인 배출을 위한 기회를 찾던 한인사회는
줄리아 해리슨 시의원이 당시 임기제한으로 차기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던 2001년 테렌스 박씨가 시의원 제20지구 민주당 예비선거에 출사표를 던지며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뉴욕시장실과 시정부 기관에서 착실히 정치 수업을 받아온 박씨는 2001년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존 리우 현 뉴욕시 감사원장으로 인해 고배를 마셨다.
이후 존 리우 사단에 들어가 민주당 사법총회 대의원과 지구당대표 등을 역임하며 한인 최초 정치인 도전을 위한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오던 그는 2006년 또다시 뉴욕주하원 제22지구 선거에 민주당 예비후보로 출사표를 던진다. 같은 존 리우 사단 소속 중국계 엘렌 영 후보와 격돌한 그는 영 후보 측의 지명청원서의 서명 관련 이의제기로 법정 소송까지 가는 결과 끝에 후보 자격을 획득했으나 결국 근소한 차이로 낙선을 하고 만다. 하지만 박씨의 잇따른 도전과정은 그간 정치에 무관심했던 한인사회에 정치력 신장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며 조직적인 정치활동이 가능토록 한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0년대 후반, 정계 무대 진출 움직임 본격화
한인들의 본격적인 정계 진출 도전 움직임은 2009년 뉴욕시의원 선거로 정점을 이루게 된다.뉴욕시 아시안 정치인들의 대부인 존 리우 뉴욕시 감사원장이 뉴욕시 감사원장 선거에 출마함에 따라 공석이 된 퀸즈 플러싱 시의원 제20지구 민주당 예비선거에 데이빗 패터슨 주지사 보좌관인 론 김씨와 존 리우 시의원의 수석 보좌관인 존 최씨, 민권센터 회장인 정승진씨가 연이어 출마를 선언했다.
더욱이 게리 애커맨 연방하원보좌관 출신인 케빈 김씨가 제19지구 시의원 민주당 예비선거에 출마했고 비영리기관 싱글스톱USA 부회장 출신인 PJ 김씨도 제1지구 선거에 출마를 했다.이들 가운데 가장 먼저 출마 선언을 한 사람은 케빈 김씨로 유일하게 예비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당시 막강 경쟁후보였던 제리 아이네스 후보와 폴 밸론 후보가 선두 다툼을 벌이는 상황에서 그는 아시안표의 결집과 민주당 유대인들의 지지로 승리했다.
제19지구는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지역이다. 이에 따라 김 후보의 당선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어졌다. 하지만 김 씨는 본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다. 선거기간 내내 인종 문제를 들고 나온 공화당의 다니엘 홀로란 후보 측의 무차별적 네거티브 선거전의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선거 전략은 백인계 유권자들이 김 후보에 대한 공개적인 거부감까지 표시할 정도로 정당과 후보 자질에 관계없이 이탈리아와 아이리시 출신 백인들을 결집시키는 결과로 나타났
다. 또한 한인 유권자들의 낮은 투표율도 패배 요인으로 꼽혔다.
시의원 플러싱 20지구 민주당 예비선거는 론 김씨가 존 최, 정승진 씨가 선거출마를 선언하면서 한인후보가 3명이 출마하는 상황에 부담을 느껴 후보직을 자진 사퇴한 가운데 결국 중국계 후보 옌 초우 후보에게 무릎을 꿇어야 했다.
당시 박빙의 승부가 예상됐던 플러싱 제20지구는 정승진씨가 중국계 옌 초우 후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였지만 개표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는 결국 3위로 밀려났다.
맨하탄 제1지구에 출마한 PJ 김씨는 득표수 1,927표로 지지율 17%를 확보했으나 개표 초반부터 마가렛 친 후보와 3선 도전에 나선 현역 시의원 앨런 거슨 후보의 선두 경쟁에서 일찌감치 밀려나 총 5명의 후보 가운데 줄곧 3위에 머물다 결국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지역 내 한인 유권자자가 352명에 불과한 지역에서 백인계 유권자의 든든한 지지와 뉴욕타임스와 데일리 뉴스 등 주류 일간지의 공식 지지를 받으며 주목받았으나 주류사회의 높은 벽을 넘지는 못했다.
■2010년 11월 선거, 정승진·아그네스 김 민주당 지구대표 당선
2010년 주·상하원 선거는 한인 후보들의 도전이 전무했다.
시의원 도전에서 석패한 케빈 김씨와 김광수 변호사 등이 주하원에 도전 의사를 타진했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모두 도전을 미뤘다.하지만 시의원 재도전을 준비 중인 정승진씨가 민주당 내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민주당 지구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고 리우 감사원장의 특별보좌관인 아그네스 김씨도 당 내 전폭적인 지지로 같은 자리에 출마를 했다.
정승진씨는 한인 테렌스 박 후보와 한 치의 양보 없는 박빙의 승부 속에 61.9%의 득표율을 기록, 38.1%의 득표율을 올리는데 그친 테렌스 박 후보를 누르고 뉴욕주 제22지구 하원의원 파트B 민주당 남성대표로 선출됐다. 파트A 여성대표로 출마한 김씨는 이날 경쟁후보 없이 단독 출마, 선거를 치르지 않고 선출됐다.<윤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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